나도 거지처럼 살 수 있을까?

by 최봉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거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 지하철 역사에 가면 박스를 깔고 자는 노숙자들이 있다. 그들은 과거에 집, 직장, 차와 가족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현재는 홀로 길에서 생활한다고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시달릴 일은 없다. 아파트 관리비, 유류비나 차량보험, 자녀 교육비 등에서 자유롭다. 단 끼니를 해결해야 하고 특히 겨울에 잘 때 추위와 싸워야 하지만 여름은 그들이 지내기에 좀 나은 계절일 수도 있다.


거지가 굶어 죽지 않고 생활을 하려면 남에게 구걸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또한 구걸을 하여 동전이라도 얻어낼 정도는 되어야 컵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칫 병이라도 걸린다면 그때부터는 언제 죽을지도 모를 처지가 된다. 따라서 "거지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말은 유행가 가사인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바보처럼 바보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향수를 달래려고 술이 취해하던 말이야 아아아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와 같은 넋두리에 불과하다.


만일 거지 생활을 한정된 기간만 한다면 어떨까? 그 경우 얘기는 달라질지 모른다. 마치 복무기간 동안만 군인으로 지내다 전역하거나 혹은 형 집행 기간 동안만 교도소 생활을 하는 죄수와 비슷하다. 내가 아는 모 대학교 철학과의 한 교수는 자신의 사이트에 과거 스스로 해본 적 있는 거지 체험을 글로 올려놓았다. 추운 날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 들어가 떨면서 밤을 보낼 때 경험했던 극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평소에 가져보지 못했던 존재의 초라함을 느꼈다고 했다. 만일 전쟁이 터져 앞집 뒷집 할 것 없이 피란 가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졸지에 거지가 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이 경우엔 남 눈치를 보지 않아 거지라도 마음은 편할지 모를 일이다.


한국 불교계에서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의 스승이던 효봉스님은 원래 일제강점기 때 와세다대학을 나온 법관이었다. 판사로 지내던 중 일본 형사를 살해한 죄로 잡혀 온 독립투사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고 나서 끝까지 의연해하던 피고의 얼굴이 계속 떠올라 괴로워한다. 그때 길가에 있던 엿장수를 보고는 그에게 가서 엿을 몽땅 살 테니 엿장수로 사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을 제안한다. 그때부터 입고 있던 옷, 가족들과의 인연을 일체 던져버리고 전국을 돌며 엿장수로 살다가 금강산에 들어가서 불교에 귀의하게 된 것이다.


길가에서 박스를 깔고 초저녁에 잠을 청하는 노숙자들은 원래 그런 신세였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초라해 보이는 종이로 된 작은 안방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성북동이나 가회동의 큰 저택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는 성냥갑 정도에 불과할지 모른다. 일부러 그들처럼 살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들도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란 마음을 한 번쯤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도 태어날 때와 세상을 떠날 때는 그런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기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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