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추억

by 최봉기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은 적도 부근 사시사철 덥기만 한 나라에 비해 한여름의 추억이 남다를 것 같다. 그건 더위가 지나가면 다시 선선해지고 추위도 찾아오기 때문이다. 지금은 에어컨이 없는 집이 없어 여름 보내기가 무척 좋아졌다. 여름철이 되면 생활하긴 짜증 나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꼽아 기다리는 게 피서가 아닐까 싶다.


초여름에 시작한 장마가 끝나자마자 라디오에서는 어디 떠나기를 재촉이라도 하듯 '해변으로 가요'나 '피서지에서 생긴 일 (A summer place, 1959)' 등 피서와 관련된 음악이 계속 흘러나온다. 바다와 계곡은 발 디딜 틈이 없고 도로는 막힌다. 실제로 휴양지에 가서 며칠 쉬는 것도 즐겁지만 떠나는 날을 헤아리며 마음 설레는 일이 더욱 기쁜 것 같다. 막상 휴가를 보내고 돌아올 때는 반대로 다시금 갑갑해지기도 한다.


한창때엔 무더위에 텐트까지 넣은 배낭을 짊어지고 높은 산 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땀을 쏟아부으며 올라가서 꽁치캔을 따서 코펠에 넣어 끓이고 쌀을 씻어 밥을 해서는 서너 명이 텐트 앞에 앉아 식사하는 모습은 만일 도심지였다면 노숙자와 별반 차이도 없건만 젊음 그리고 친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이 모든 피로를 잊게 하며 오히려 행복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지금은 우리 자녀들이 여름이라 친구들과 피서지로 향한다. 대학 졸업하고 어렵게 취업하여 직장 생활하느라 주말마다 친구들과 어딜 다녀온다고 하면 기꺼이 내 차를 내어주었다. 이번엔 가족이 함께 피서를 떠날지 모른다. 지금과 같은 피서철이 되면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가려 현재 구순이 지난 부친께 여행비를 달라고 할 때 부친께서는 바로 그 무렵이던 1953년 7월 27일 한국 전쟁이 휴전될 때 포로 교환하던 시절의 일을 말씀해주셨다. 젊은 시절 부친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3년 반을 보내시며 생고생을 하셨기에 내가 비슷한 연령 때 여행 간다고 했을 때 만감이 교차했을 듯싶다.


생활이 안정되고 먹고사는 데 별 걱정이 없어야 가족이나 친구들과 더위를 피해 자연을 찾고 낭만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필요한 것이 건강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노래 가사도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구순 넘으신 부친은 오래 차로 다니는 것이 힘드시고 모친은 무릎 관절이 좋지 못해 오래 걷지를 못하시니 집 근처나 다니실 뿐 어디 먼 데는 가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올여름은 다들 경제사정이 좋지 않지만 예년보다 코로나 위협이 적어져 어디론가 나들이할 마음을 가지리라 본다. 사람이 살면서 늘 비슷한 일과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한 번씩 떠나는 여행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번엔 텐트를 차에 싣고 야영장에 가서 며칠 묵고 오자고 제안한 친구가 있다. 약간 불편이야 하겠지만 이 나이에도 자연 속에서 낭만을 만끽할 수 있을는지 괜히 궁금해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륙, 섬 그리고 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