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곧 대학을 졸업할 아들이 취업을 하여 현재부터 두어 달 교육이 끝나면 곧 근무할 평택에서 생활할 거처를 드디어 계약하였다. 평택 지제역 주변 고덕엔 삼성전자 공장이 들어와 있고 주변에 협력사들도 함께 있다 보니 요즈음 같은 취업시즌엔 주변에 원룸 방은 쓸만한 곳이 나오는 즉시 바로 계약이 되어 버려 남는 방이 없는 상황이다. 이틀 전에는 애 엄마랑 주변을 둘러보다 삼성전자 공사 현장에서 일을 마치고 헬멧이나 바지에 작업용 스타킹을 신고 나온 현장의 남녀 공사근로자를 보며 놀랐다. 오후 5시에 한마디로 베트남에 온 듯 오토바이족들이 수천 명 무리를 지어 도로를 가득 메웠다.
요즈음 특히 코로나 사태로 경제사정이 좋지 못하지만 거대한 공장이 가동되어 돈을 벌어들이고 고용된 사람들이 급여를 받아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손뼉 칠만한 일이다. 내가 대학시절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쓰며 지내다가 직장을 구해 급여를 받기 시작할 때가 눈에 아른거린다. 내 통장에 월급날이 되면 급여가 입금되어 그 돈으로 지내는데 처음엔 하숙비에 할부금까지 내고 나면 돈이 부족하여 현금서비스를 받기도 했는데 이자가 장난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 신촌의 하숙집이란 곳에서 신용카드 사고 (내 카드를 빼 가고 다른 용도 폐기된 카드를 지갑에 꽂아 두는 사기)까지 당했다. 한 하숙집에 학생 포함 여럿이 사는데 그중에 양아치 같은 인간 하나가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비슷한 짓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일로 조금 쪼달리기도 했는데 그 후 보너스도 받고 급여도 오르며 좀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며칠 전 나랑 같이 입사했던 동기 하나랑 연락을 했는데 삼성생명의 전무가 되어 있다. 그는 S대 법학과 출신으로 동기중 가장 성공을 한 경우이다. 성격도 좋고 능력도 뛰어나 현재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고향이 경기도 화성이었던 그도 사회 초년병 시절 때에는 형님댁에서 기거하며 여유롭지 못하게 지냈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상위 0.1% 이내의 위치에는 들어가는 것 같다. 30년의 세월 동안 한 인간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고 동기지만 자랑스럽기만 하다.
나의 아들도 월 38만 원을 원룸 임대료로 낼 텐데 곧 중고차를 한대 몰면서 한 달에 백만 원은 저축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직 급여는 받지 못해 복비는 애엄마가 내고 첫 달 임대료는 내가 내줘야 하겠네라고 하자 큰소리로 "감쏴합니다"라고 했고 첫 달 급여를 받으면 한턱낸다고 했다.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때 집에서 늘 잔소리가 나오게 생활을 하고 지냈는데 요즈음처럼 취업이 힘든 때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회사 Applied Materials에 취업을 해주니 자식이지만 이제는 고맙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여동생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아직 남아있는 짐이 하나 있지만 어깨가 많이 가벼워졌다.
앞으로 짝을 구해 가정도 이루고 자식도 낳고 살겠지만 인간이 태어나 학교, 직장, 결혼을 거치는 삶의 과정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아들도 30년이 지나면 환갑을 앞둔 내 나이 가까이 될 터인데 세칭 출세란 걸 하는 것도 훌륭하겠지만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때 결코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