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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와 찜통더위

by 최봉기

여름이 되어 찜통더위가 연일 이어질 때 내리며 더위를 날려주는 비를 단비라고 부른다. 또한 초여름이 되어 더워질 때 장마가 오면 무더위가 진정되기도 한다. 장마 때 비가 주룩주룩 하루 종일 쏟아질 때에는 선선해져 마치 여름이 사라진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불과 며칠 전 더위로 숨 막히고 얼굴이 타고 땀이 쏟아졌건만 장마는 이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반가운 손님이 되기도 한다. 장마가 끝남과 함께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다들 피서를 떠나면 도시가 한산해져 시내 교통사정이 갑자기 좋아진다. 이땐 땡볕더위가 교통체증을 해소시키는 반가운 손님이 된다.


가을이 올 때까지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한 달 이상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여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선풍기로 여름을 보낼 땐 오래 켜 두면 더운 바람이 나와 꺼버리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집마다 에어컨이 있어 여름 나기가 퍽 좋아졌다. 더운 날씨에 땡볕에서 일을 할 경우엔 더위 먹지 않도록 염분 및 수분 보충에다 영양 보충까지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혹서기의 무더위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고맙기도 한 일이다. 만일 비가 많이 오든지 하여 이상기온이 될 경우엔 지내긴 좋지만 벼가 익지 않아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고 한다. 추위도 마찬가지이다. 동절기엔 혹심한 추위도 있어야 하건만 지나치게 온화할 경우 흙속의 벌레들이 병충해를 일으키며 다음 해 농사에 큰 피해를 준다고 한다.


이렇듯 폭염이 쏟아지는 여름 이건만 정도의 차이는 모르지만 누구도 무더위를 피해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과도 같다. 여름에 흐르는 땀과 숨 막히고 땡볕에 그을리며 고생을 해본 사람만이 선선해질 때 무르익은 과일 맛과 함께 낙엽진 황혼의 우수도 느낄 자격이 있기에 그런 것 같다.


한국인만큼 기후적응을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온화한 기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조금만 쌀쌀해져도 목도리에 귀마개까지 꺼내어 난리를 친다. 이에 비해 한국인은 열대의 아프리카든 꽁꽁 얼어붙는 모스크바든 관계없이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은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만하다고 생각된다.


계절의 변화와 그 속에 함축된 인생의 의미는 땀과 행복의 관계를 가슴속 깊이 느끼게 해 준다. 나는 삶 속에서 땀의 의미를 무척 소중하게 느끼며 살고 있다. 언제부턴가 그러한 의미를 담은 좌우명을 여기저기 써붙이기도 했다. "어제 흘린 땀이 없이 오늘 행복할 수 없고, 또한 오늘 흘린 땀이 없이 내일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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