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멋스럽고 풍치(훌륭하고 멋진 경치, 격에 맞는 멋)이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이라 나온다. 그러한 풍류는 조선시대 때 양반들이 좋은 경치를 찾아 자연 속에서 술을 마시며 거문고 소리를 듣고 시를 쓰며 즐기는 것인데 여러 산수도를 보면 경치가 빼어난 계곡에서 자리를 깔고 앉거나 강에서 배를 띄어놓고 여럿이 앉아 악기 연주와 함께 물놀이도 하며 즐기는데 여기 기생이 동승하기도 한다.
사실 강에서 배를 띄워 놓고 악기에 기생까지 동원하려면 현재의 돈가치로 5천만 원 정도가 된다고 하니 한나절에 웬만한 서민 가족의 일년 생활비에 맞먹는 돈을 뿌리며 즐기는 사치스러운 놀이라 어찌 보면 골 빈 양반 놈들이 별 미친 짓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호화판 놀이보다 혼자 단아하게 사색하며 시를 쓰는 선비의 풍류가 훨씬 멋과 기품이 있어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형태는 바뀌었지만 풍류를 즐기는 인간 본연의 마음은 크게 바뀌지 않은 듯싶다. 계급사회인 조선시대는 양반만이 풍류란 걸 즐길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누구나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아무 때나 야외로 나가 자연 속에서 음식, 술, 음악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풍류가 전통적인 말이라 대체어를 찾기 어렵지만 '엔터테인먼트' 정도가 근사한 의미로 통하지 않을까 한다.
풍류라는 말이 나오면 빠지지 않는 것이 술일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낮과 밤 가리지 않고 음주를 즐겼으며 술을 마시며 즉석에서 붓으로 시를 썼던 게 일반적인 일이었다. 현대로 오면 낮에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소설가, 시인들은 직업적으로 특히 술을 즐기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술은 인간을 흥분시키는 약과도 같아 기쁠 때엔 기쁨을 키워주고 슬플 땐 슬픔을 달래는 묘한 힘이 있다. 예술가가 술을 마실 때 느끼는 감성은 그 자체가 영화요 소설이요 시가 되어 버릴 정도로 술은 인간의 뜨거운 감성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휘발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
2002년 월드컵 때 국민들이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며 함성을 질렀던 것부터 시작해 일상에서 벗어나 등산이나 여행을 가고 오케스트라 연주나 공연에서 노래를 들으며 열광하거나, 영화를 보는 것, 이 모두가 현대판 풍류놀이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이처럼 현재 즐기는 풍류놀이는 종류도 많고 흥미롭지만 전통적인 풍류놀이와 비교하면 즉흥적인 것일 뿐 그 순간이 지나면 흔적도 남지 않는 일회성 유희라는 느낌이 든다.
세상을 음미하며 이를 시로 표현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식의 전통적인 풍류는 바쁜 현대인들의 스타일과는 잘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과거의 것도 좋은 것은 계승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고령화되고 퇴직자가 많은 현실에서 퇴직자들은 저마다 종사해온 분야의 경험과 지식뿐 아니라 각종 글이나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인데 그러한 것들을 글로 옮겨 보는 일도 무척 의미로울 수 있으리라 보인다.
또한 요즈음 같은 메마르고 이기적인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벽을 허물고 공감할 수 있으며 또한 좀 더 영속적일 수 있는 풍류 거리를 만들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1982년 정치적 목적으로 도입된 프로야구는 벌써 40년이 되었건만 모든 이들이 즐기는 국민 스포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