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하나랑 텐트를 차에 싣고 군산 부근 선유도란 섬으로 향했다. 친구가 전남 광주에 직장이 있어 내가 종종 내려가 주변의 목포, 강진, 해남, 비금도 등을 여행해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예순을 앞둔 나이에 20대처럼 야영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생일 선물로 아들이 사준 침랑과 텐트 깔판을 배낭에 집어넣었고 조립식 의자도 하나 구해 함께 넣어 차에 싣고 이동을 했다. 예기치 않게 비가 오거나 혹은 야영장이 자리가 없을 경우 차라는 마지막 대안이 있어 덜 불안했다.
광주에서 군산 방향으로 된 고속도로를 달려 새만금 방조제에 도착해 양쪽 바다가 있는 경치를 보니 가슴이 확 트였다. 과거 배로 가던 길이라 접근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육지에서 이어져 군산 주변 섬은 한적한 어촌이 어느새 상업적인 관광지로 변해 있었다. 드디어 선유도에 도착하여 식당에서 회덮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가격이 15,000원으로 서울보다 비쌌다. 아담한 바닷가는 크게 붐비지 않았으며 공중에 설치된 줄에 두 사람이 매달려 바다를 가로지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해변엔 여기저기 외국인들도 보였는데 그중엔 주변의 가까운 대학에 유학 왔다는 인도 사람도 있었다.
식당에서 해수욕장 주변에 야영을 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피서객의 신고만 없으면 별일 없다고 했는데 다행히도 우리는 솔밭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수 있었다. 해질 무렵이 되니 해수욕장은 한적했고 우리가 기다리던 때가 왔다고 생각해 술과 함께 준비해 온 음식을 꺼내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직접 대하는 일몰의 경치도 장관이었고 선선한 바다 바람 속에서 느껴지는 기분은 세상 어떤 곳과도 비견되기 어려웠다. 공교롭게도 그 시간에 서울은 비가 퍼붓고 있다는 소식을 애엄마로부터 접하니 상대적인 행복감이 더욱 커지기도 했다.
조금씩 거나해지며 지금껏 살아온 삶의 추억을 하나씩 끄집어내며 모처럼의 황홀함을 느껴보았다. 모든 게 좋았지만 웽웽거리는 모기소리만이 옥에 티가 아니었나 싶다. 바람도 불고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모기향을 3개씩 피워도 야외이고 연기가 날리니 효과가 없었다. 아무튼 얘기를 나누다 나는 텐트로 들어갔는데 밖에서 자던 친구는 모기에 뜯겨 어쩔 수 없이 텐트로 들어왔다.
아침에 일찍 파도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고 텐트를 걷어 짐을 정리해 차로 주변의 장자도, 대장도, 신시도를 하나씩 둘러보았다. 섬으로 이어지는 바다의 여기저기 경치는 무척 아름다웠다. 섬을 빠져나와 다시 새만금 고속도로를 타고 군산시로 이동해 영화 '9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 '초원 사진관' 옆으로 가니 '한일옥' 이란 식당이 있었다. 뭇국이 맛있기로 소문나 대기표를 받아 20분씩 기다린 후 아침을 먹고 이동하여 금강을 건너 근처 장항시를 둘러보았다. 과거 제련소가 있어 금을 비롯 비철금속을 생산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공장 흔적만 남아 있었다. 장항은 백제의 전략적 요충지로 신라, 당나라와 3차례에 걸친 기벌포 해전이 있었던 곳이었다. 장항에서 다시 군산에 돌아와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캠핑여행을 마무리하였다.
몇 달 전부터 기대했던 캠핑여행이었고 나름 준비를 했지만 텐트 치는 일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텐트 고정용 팩이 없어 옆텐트에 부탁해 2개를 해결했고 팩을 대용할 쇠톱처럼 생긴 철물을 어렵사리 구해 땅에 박고 텐트 줄을 연결해 텐트를 쳤다.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그것도 텐트에서 보낸 일은 좋은 추억이지만 20대도 아닌 나이에 하나하나 직접 준비하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여름이 아니라면 모기란 불청객을 피할 수 있어 좀 나을 거란 생각도 들긴 하였다.
나이를 떠나 뭔가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직접 시도해본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