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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기피하는 일들

손봉호 교수와 이태석 신부

by 최봉기


상에서 하는 일들을 보면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하는 일이 있는 반면 좋은지 싫은지도 모르고 하는 일도 있고 좋다고 말하기 어려워 대개 피하지만 기꺼이 하는 일도 있다. 마지막 경우에 해당하는 대표적 사례가 군 복무일 수 있으며 자신은 괴롭지만 봉사차원에서 하는 일도 있다.


대한민국 남성중 신체 건강한 성인이라면 군 복무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군 복무를 기쁜 맘으로 하는 사람이 혹 있다면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주변을 둘러보면 군을 어떻게든 피해나가려 하는 사람이 상당수이다. 그 이유는 군입대를 하면 개성과 자유가 박탈되고 엄격한 규율 속에서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기에 그러하다. 게다가 복무기간 중 학업이나 생업과의 공백도 발생한다.


내가 오래전부터 존경해온 손봉호 교수는 키가 157cm로 병역면제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원해서 입대하였다. 현재 버젓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 병역을 피할 수 있는데도 자원한 경우는 당연히 없고 입대 대상임에도 온갖 수단을 써서 단기복무나 면제 대상으로 병적을 고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손봉호 교수는 늘 생각과 행동이 일치했고 사회의 개혁에 앞장서온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나의 경우 20대 때 가장 부담스러웠던 일이 군입대였다. 일단 연기해 공부를 계속했고 대학원을 마친 후 늦게 군에 입대를 하여 꽤 고생도 하였다. 훈련병 시절에는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던 조교 하나가 훈련 때 대학원 졸업자라고 하니까 눈에 불을 쓰고 쌍욕을 해대며 표적 삼아 나를 괴롭혔다. 그러자 대학을 다녔던 그 인간의 선임이 개인적으로 나를 도와주기도 했다. 그 조교를 내가 소속된 조가 아닌 다른 조로 보냈다. 한 번씩 나에게 "힘들면 말해"라고도 했다. 군이란 곳은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니 상관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처신하는 나쁜 인간도 있는 반면 이를 중재하는 좋은 사람도 있다.


군대 이외에도 남들이 하기 꺼리는 일을 기쁘게 받아들인 현대판 성인 이태석 신부 (1963~ 2010)가 있다. 그는 공부를 잘해서 의대에 갔고 기타, 피아노를 비롯 드럼, 금관, 목관 악기도 잘 다루었다. 작곡 실력도 뛰어났으며 운동도 잘하고 기계도 잘 다루던 사람이었다. 이태석은 의대 졸업 후 신학대학에 갔고 신부가 되어서는 20년간 내전이 이어지던 위험지역 수단에 자청해 가서 8년간 (2001~2008) 봉사의 삶을 살았다. 수단에서도 가장 오지인 톤즈는 전쟁, 기아, 질병이 가장 심했던 곳이었다. 그는 거기서 병들고 굶주리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치료하고 함께 어울리며 살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병원을 손수 건립했고 한센병 환자와 결핵환자를 보살피며 지속적인 예방접종 사업을 벌였다. 또한 미래 세대를 위해 손수 학교와 기숙사를 짓고 수학을 가르쳤고 악단을 만들어 지휘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8년 10월 휴가차 귀국해 건강검진을 받는데 대장암 4기 판정을 받는다. 투병 중 자선공연도 하고 봉사활동과 지원을 호소하였지만 간으로 암이 전이되어 "Everything is good" 이란 유언을 남기고 2010월 1월 47세를 일기로 선종하였다.


남이 기피하는 군 복무를 자청해서 하는 사람은 자신의 안위보다 사회나 국가를 생각하고 또한 이기적이기보다 떳떳하고 당당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밖에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은 태어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삶을 추구하기 쉽다. 특히 공부를 잘한 사람일수록 명문대를 나와 돈을 잘 벌어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즐기며 살면 누구 하나 욕할 사람 없다. 하지만 간혹 자신에게 굴러들어 온 복을 걷어차 버리고 가시밭길을 자청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 배만 불리며 사는 사람은 자기 혼자의 행복으로 끝나지만 남을 위해 자기 삶을 바치는 사람은 자기를 통해 많은 사람의 행복이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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