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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어울림과 긴 이별

by 최봉기

갑자기 친구 부친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차표를 예매해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사정이 되지 않았다면 부의금만 보냈을 텐데 문상을 가니 한결 뿌듯함을 느꼈다. 그 이유는 15년 전 여러 친구들이 빙모상 때 문상을 와 큰 위로를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기쁜 일이야 따로 축하를 받지 않아도 별 문제없지만 슬픈 일을 당할 때 위로받는 것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고인이 된 친구 부친은 95세로 영면하셨는데 그전만 해도 건강하셨지만 코로나 감염으로 인해 병세가 갑작스럽게 악화되셨다고 했다.


나의 장모는 15년 전 가족과 함께 담양, 보성, 구례, 남원으로 호남 여행을 다녀온 후 갑자기 눈이 노래져 큰 병원 가서 검사를 하니 '담관암' 판정이 나왔다. 그 후 나는 7개월 동안 제대로 드시지도 못하고 사람이 말라 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애를 태웠고 장모는 결국 삶과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신 것이다. 아내는 고인이 떠나기 전 우연의 일치였는지 모르지만 가족이 함께 했던 여행이 퍽 뜻깊었다고 했다. 내가 결혼하고 장모랑 지낸 시간은 12년인데 벌써 15년이 훌쩍 지났으니 함께 어울렸던 시간보다 이별의 시간이 더 길어져 버렸다. 나는 딸만 셋인 집의 맏사위가 되다 보니 처가의 대소사가 나의 몫이기도 했고 장모께서 별세하기 전부터 그 후까지 한동안 처가 어른들을 모시기도 했다. 장모는 결혼식 때 딸을 떠나보내며 눈물을 글썽이셨는데 결혼 후 나와 손자들을 무척 아껴주셨다. 이렇듯 사안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함께 어울리는 시간보다 떠나보내고 고인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긴 경우도 있긴 하나 보다.


나는 복되게도 양친이 아직 곁에 계신다. 2년 전 구순을 앞둔 부친이 신장에 문제가 있어 병원에서 몇 달을 입원하셨지만 그 후 생업을 정리하시고 이제 투석을 하시며 건강에 큰 문제없이 지내고 계신다. 어릴 적 토요일 오후에는 나가서 일을 하고 들어오시던 부친이 비가 주룩 내릴 때면 일 나가는 대신 집에서 함께 계실 때엔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곤 했다. 그러한 존재가 나의 곁에서 사라지는 날 나의 마음 한편이 무너질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버이에 관한 글이 하나 생각난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송강 정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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