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자유롭게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시인, 극작가, 작곡가, 화가, 만화가, 분야별 전문강사, 가수와 함께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은 대개 프리랜서로 일한다. 현재 작장인 혹은 오랫동안 직장생활만 해온 사람들은 늘 시간과 행동을 통제받으며 지내왔기에 이러한 직업군을 꽤 동경할지 모른다. 모르긴 해도 프리랜서들에게 자신들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물어볼 경우 소수의 스타급들을 제외한다면 반대로 대답을 할지 모른다. "수입이 들쭉날쭉한 프리랜서보다는 매달 꼬박꼬박 급여를 받는 월급쟁이가 낫다 "라고.
프리랜서 직업의 특성이라면 첫째, 일을 하는 방식이 일단 하기로 한 일의 큰 그림과 일정이 정해지면 출퇴근이 따로 없고 누군가의 지시를 받거나 눈치도 보지 않고 일을 한다. 일하는 방식만 그런 게 아니라 개성이 강해 누군가로부터 간섭이나 통제받는 것 자체를 싫어하며 혹여나 상대가 자신들의 개성과 자존심을 무시할 경우 과감히 판을 깨어 버리는 일도 있다.
둘째, 양극화가 매우 심하여 잘 나가는 소수는 TV나 잡지 등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지만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밑바닥 생활을 하며 생계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경우가 이들보다 훨씬 많다. 간혹 무명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다 유명해지는 경우가 있다. '독고영재'란 영화배우는 오랜 세월 단역만 맡으며 지내다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 '하얀 전쟁'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그 영화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후 드디어 무명생활을 청산하고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상을 수상했을 때 부친이 전화로 "이제 고생 그만해도 되겠구나"라며 흐느꼈다고 한다.
셋째, 프리랜서 중 창작을 주업으로 하는 문인들은 작업의 성격이 감성적인 경우가 많아 일반인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폭주를 하기도 한다. 소설가중 올 4월에 고인이 된 이외수는 한때 원고료를 받으면 우선 소주를 박스채 사놓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이문열도 한때 술을 워낙 마셔 건강이 좋지 못했던 걸로 전해진다. 과거 문인들 중 소설가 염상섭, 시인 변영로 등은 문인 중에서 알아주는 주당들이었으며 고인이 된 시인 공초 오상순과 만화가 고우영은 애연가로 유명했다.
지금까지 자유로운 직업인 프리랜서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내가 언급한 직업군들 외에 새롭게 등장한 초현대판 프리랜스 직업도 꽤 있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예순이 다 된 나 자신은 프리랜서란 직업을 무척이나 동경했건만 대기업에서 40대 후반까지 월급쟁이 생활을 하고는 퇴직하여 최근 1년 4개월간 290편의 에세이를 써오고 있다. 프리랜서의 빛과 그림자가 워낙 극명하기에 누구에게라도 직장 그만두고 프리랜서 길을 가란 말은 하기가 무척 조심스럽다. 1988년인가 10대 가수 시상식에서 10여 년간 무명 생활을 하다 인기를 얻어 처음 수상했던 최성수에게 김동건이 했던 질문이 "가수 된다고 했을 때 집에서 반대는 없었나요?"였다.
자신이 특정 분야에 남다른 열정과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정도는 과감한 도전을 해보는 것도 나름 의미는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떤 일이든 실패의 처절함과 성공의 영광은 함께 존재하건만 인생은 한 번밖에 없는 게임이기에 더욱 간절하고도 애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