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와 심지어 혹성 그리고 노래도 나름의 수명이 있다고 한다. 유행가의 경우도 애창되다 사람들에게서 잊히는 노래가 한두 곡이 아니다. 가수 양희은의 말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란 노래는 원래 대학가에서 불리던 노래이지만 그렇게 오래 사랑받을지는 몰랐다고 한다. 또한 과거 금지곡의 경우 그냥 놔두면 저절로 사라질 것을 금지를 하니 오히려 수명이 길어지게 되었다고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한평생 살다 이름 하나만 남기고 눈을 감는다. 과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던 때엔 예순까지 살면 장수했다고 잔치를 했지만 요즈음은 칠순 때 잔치를 하고 대개 팔십까지 산다. 최근 부고 내용이 뜨는 연예인들 중 내가 초등학교 때 TV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그때는 내가 10대였으니 당시 30대였다면 현재 80대이고 20대면 현재 70대가 된다. 하지만 빠르게는 50대 이전, 더 이를 경우 20대에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는데 이를 '요절'이라 한다. 요절한 이들 중엔 괄목할 재능으로 세간의 이목을 끈 경우가 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 중 배호 (1942~71), 김정호 (1952~85), 김현식 (1958~90), 김광석 (1964~96) 등 가수와 이상 (1910~37), 김소진 (1963~97) 등 소설가 그리고 시인 조지훈 (1920~68)이 그러하다.
인간이 팔순까지 산다면 특정 분야에서 20~30대에 터를 닦아 40대에 자리를 잡으면 그 후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30대 때 너무 빨리 성공하면 계속 일이 잘 되리라 생각하고 무리하거나 혹은 방심할 경우 오히려 그때부터 내리막 길로도 간다. 요절은 이와 달리 번창할 때 아예 종말이 오니 흔치도 않지만 삶이 황당하기 그지없다. 요절한 이들의 작품은 원래 훌륭했지만 사후에 애통함 혹은 희소성의 가치와 함께 더욱 빛을 발하기도 한다. 만일 이들이 죽지 않고 계속 활동을 했다면 현재와 같은 관심을 끌까 궁금해진다.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의 경우 나랑 동갑이라 마치 친구처럼 느껴지지만 죽기 전에도 매우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작곡도 많이 했고 콘서트를 한 횟수도 기록에 오를 정도였다. 그러다 1996년 스스로 이유 모를 종말을 맞이하였다. 사실 생전에 TV를 통해 그의 노래를 접할 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건만 사후 그의 노래를 접할 때 가사와 목소리에 남다른 애절함이 새삼 느껴진다.
사람이 자신의 수명을 정확히 안다면 삶 자체가 별 재미없을지 모른다. 대개 장수 유전자가 있는 사람은 뜻밖의 사고를 당하지 않는 한 오래 살 가능성은 높다. 또한 술 담배를 많이 할 경우 수명이 짧아진다지만 담배를 하루 몇 갑씩 피워도 일부는 폐암에 걸리지 않고 장수를 한다. 이와 함께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인데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일 수도 혹은 저주일 수도 있다. 따라서 현재 일이 잘 된다고 자만하거나 힘들다고 쉽게 접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20대에 세상을 떠난 배호란 가수는 젊은 시절 온갖 고생을 하다 이제 세상에 알려지고 살만하다 싶을 때 병을 앓기 시작하며 결국 조용히 눈을 감게 되었다. 지금도 그를 좋아하는 이들은 그의 곡을 애창한다. 한평생을 살며 평생 영화를 누리는 것은 그야말로 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꽃을 피우자마자 바로 저버린 사람들 중 일부는 오히려 죽고 나서 더욱 유명해지고 더 큰 사랑을 받게 되니 이 또한 복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