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예순이 되면 환갑잔치를 하고 나서 곧 세상을 떠나던 일은 이제 먼 과거 얘기가 되었다. 게다가 생활수준이 올라갈수록 못살던 시절 서로 나누던 온정은 갈수록 메말라지고 노인이라도 돈이 없으면 평생 자식을 위해 희생했더라도 인간대접을 못 받으니 노후에도 쩐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내가 경험한 노부부의 서글픈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집안의 할아버지 한분은 월남하셔서 재혼을 해 슬하에 2남 1녀를 두셨는데 첫아들은 할머니가 데려온 자식이었다. 그 어른은 은퇴 후 가진 돈을 큰 아들 사업에 쏟아붓고 큰 아들과 함께 살았다. 큰 아들은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지만 사업을 해서 돈을 좀 벌더니 처와 한통속으로 노부모를 홀대하더니 이젠 노부모를 아예 내보내려 했는지 식사 때 쌀쌀맞게 내놓던 음식이 김치랑 콩나물국이 다였다. 나랑 두 분이 있던 밥상에서 할아버지는 인상을 찡그리며 "이 자식들!"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 후 노부부는 한겨울에 짐을 싸 그 집을 나가 작은 아들 네로 갔다.
사실 평생 자식 뒷바라지를 하면서 자기 노후까지 걱정 없을 정도가 되려면 은퇴 전 고액 연봉자였거나 유산이라도 많아야 할 터인데 그 정도가 되는 사람은 사실 많지 못하다. 따라서 대부분 늙으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야 할지 모르며 준비가 없는 노후의 삶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
그럼 결혼해서 대출받아 집을 구하고 자식 교육을 시키며 기본 노후준비까지 해놓고 은퇴를 하면 어떻게 노후생활을 할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돈이 많은 노인들은 처량한 노후를 보내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무엇보다 자식이나 손자 혹은 친지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돈은 있지만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이란 소리를 듣는 경우라면 실패한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밖에 아직 노후 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은퇴자의 한 명으로 경험한 것들을 정리해 본다. 첫째, 은퇴 후에는 설령 경제적으로 곤궁하지 않을 경우라도 용돈벌이 정도의 일은 하는 게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것보다 정신건강에 좋다. 인간은 노동이란 걸 하며 살도록 태어난 존재인지 노동을 하지 않는 것과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둘째, 은퇴 후에는 건강관리에 더욱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시간 날 때마다 걷기, 조깅, 등산 등 유산소 운동과 함께 근력 운동을 매일 규칙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시간 날 때마다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는데 시간이 안 될 때는 아침에 일어나 푸시업 200회를 포함 허리, 하체 운동을 하고서 일을 시작한다. 운동을 할 때마다 건강은 노력한 만큼 지켜진다는 생각을 한다. 노후에는 건강에 빨간 불이 켜질 경우 일은 고사하고 삶이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셋째, 은퇴 후에는 그전에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을 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기가 될 수도 있다. 스포츠, 여행을 포함 색소폰 등 악기 연주, 합창단 등 음악 활동, 그림에 유튜브 운영 등 다양하다. 나의 경우는 최근 에세이 쓰기를 하나의 취미생활로 삼아 매진 중이다. 최근 1년 4개월 동안 300여 편의 에세이를 써왔다. 글을 한편 쓰는 약 5시간 정도는 약간 과장해서 무아의 경지에서 창작의 무한한 기쁨과 성취감 느끼게 된다. 이렇게 완성한 글은 지인들과 교류하는 데 좋은 친교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또한 내가 과거에 완성한 글을 지금 한 번씩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이 글들은 나 자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가족과 친지를 포함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교감의 틀'이자 나의 분신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넷째, 노후에는 자신이 현역에 있으며 축적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인생 후배들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해보는 것도 의미로울 수 있으리라 보인다. 갈수록 늘어나는 대한민국 은퇴자들의 과거 현역 시절 경험은 은퇴했다고 썩히기엔 너무나 아까운 사회적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이 다양하게 추진될 경우 은퇴자는 은퇴자대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으며 또한 사회는 사회대로 소중한 자산을 결집함으로써 더욱 내실 있는 발전을 기할 수 있으리라 보인다.
지금까지 노후에 관한 나의 경험을 마구 쏟아부었다. 갈수록 길어지는 노후의 삶과 어찌 보면 초라해만지는 노인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하지만 은퇴한 시니어들은 현재보다 더욱 당당해질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현재 대한민국이 있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자긍심과 함께 자신의 황혼의 삶 속에서 마지막 잠재된 것들을 후회 없이 꽃 피울 수 있는 존재들이기에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