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그네스'는 미국의 존 필마이어가 1982년도에 발표한 희곡으로 뉴욕의 한 수녀원에서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77년 아기를 출산하고 죽여 쓰레기통에 버린 사건이 있었고 37세의 머린 머피 수녀는 결국 정신착란에 의한 일이었음을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작품은 아그네스 수녀와 그녀의 임신으로 수녀의 정신감정을 하러 온 여의사 리빙스턴, 그녀를 법으로부터 지키려는 원장수녀 마리안 루스의 만남으로 파헤쳐지는 진실과 충격을 그려내고 있다.
21세인 수녀 아그네스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죽여서 쓰레기통에 버린 혐의를 받는다. 그녀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법원은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을 보내 아그네스의 정신상태를 조사하고 진상을 파악하게 한다. 고립된 수녀원에서 있던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은 온갖 추측과 의심을 낳고 그녀를 위기상황에 빠뜨린다. 그녀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듯이 자신도 그렇게 수태한 것이라 주장한다. 순수한 아그네스를 보며 자신의 신앙을 확고히 해왔던 마리안 루스 원장수녀도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아그네스의 임신에 대해 과학이나 상식의 잣대를 들이대면 여성은 남성을 통해서 아이를 가질 수 있으므로 그녀는 강간을 당했거나 유혹을 받아 육체적인 관계를 가졌을 것이란 단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결국 리빙스턴은 아그네스가 매춘부이자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로 인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성적인 학대를 겪으며 자라온 사실을 알아낸다. 그녀는 어머니로 인해 성에 대한 기본 지식이 왜곡되었고 자신이 어떻게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도 기억할 수도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정신착란과 혼돈상태에서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아그네스는 리빙스턴의 도움으로 수녀원에 돌아가 치료를 받게 된다.
'신의 아그네스'에서 아그네스를 위한 진실 찾기는 그녀를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으며 관객들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진실은 꼭 필요한가 하는 질문에 직면한다. 아이를 죽인 아그네스가 과연 죄인이며 누가 임신시켰는가에 대해 작가는 속 시원한 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관객 스스로가 과학과 믿음, 삶의 신비와 불가사의 한 우주에서 종교적인 해답을 찾길 바라고 있다.
이상의 스토리는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니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나도 처음엔 스토리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에는 드러나지 않은 제3의 인물이 현실에 어둡고 비상식적인 한 여성을 대상으로 농간을 부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수녀도 심증은 가지만 그것을 밝혀 내려하는 것보다는 신비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그네스에게 현실적으로 나을 거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종교와 관련한 문제는 개신교든 천주교든 인간의 영역이 상당 부분 신의 영역 속으로 흡수 내지 종속된다. 현재의 삶 자체를 신이 내린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와 함께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과학을 신의 영역 아래에 종속시키기까지 한다. 따라서 복종을 강조 내지 강요할 뿐 성서의 내용을 자신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요목조목 따지는 것 자체를 마치 신에 대한 도전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 아그네스'를 '신의 아그네스'라고 부른 걸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