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교토 여행의 추억
오사카, 교토 여행의 추억
2019년 봄 가족과 함께 오사카, 교토 여행을 다녀왔다. 과거에 직장에서 도쿄에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었고 대학 때 일본어를 공부하기도 하여 이전에 가보지 못했던 오사카, 교토 여행을 무척 고대하였다. 애 엄마가 오사카와 교토 여행에 관한 책을 하나 구입해 숙소 및 열차를 미리 예약해 두었고 이동 동선별 버스 편까지 확인해 두었기에 수월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첫날은 오사카 공항에 내려 지하철로 이동하, 여장을 풀고 도톤보리(오사카 남쪽 도톤보리 강 유역에 형성된 유흥가)로 갔다. 그곳은 화려한 네온사인과 함께 식당, 술집이 모여 있었고 행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일본식 라멘집으로 가서 김치와 함께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 오사카성으로 갔다.
1593년 오다 노부나가를 이어 일본 통일 대업을 완성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웅장하게 지은 성이 오사카성이었는데 도요토미가 죽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 포위공격'이란 여러 전투를 통해 도요토미 가문을 공격, 결국 멸망시켰다. 오사카성은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재라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거기서 버스로 이동하여 주택가와 시장을 둘러보았는데 주택가는 전통가옥들이 골목 안에 따닥따닥 붙어있었고 그 가운데 미용실, 병원 등 간판이 눈에 띄었다.
다음 날은 오사카의 온천 목욕탕으로 갔는데 갈대 줄기 같은 게 띄워있는 탕도 하나 있었고 또 놀라운 게 일본은 남탕에 옷을 입은 여자가 들어와 탕 주변을 정리하기도 하였다. 나는 미리 알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몰랐다면 무척 난처함을 느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교토로 이동하여 예약해 둔 숙소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숙소에는 미국, 영국 등 온갖 국적의 관광객들로 붐볐다.
다음날은 교토의 유명한 절 '청수사'로 갔는데 가는 도중에 '철학의 길'이란 길 이름도 있었다. 청수사는 언덕 위에 있어 주변은 햇볕이 무척 강했고 아래쪽에는 메밀국숫집이 많았는데 소바 안에는 구운 시커먼 청어가 들어가 있었다. 식당에서 내려오니 기와로 촘촘히 붙어있는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이 스필버그 감독, 짱쯔이 주연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촬영지였다.
점심 식사 후 동경대와 더불어 일본 최고 명문대중 하나이며 노벨상 수상자를 여럿 배출한 교토대학으로 갔다. 입구에서 보니 무리를 지어 통일된 전통 의상을 입고 군무와 같은 율동을 하는 무리가 보였다. 가족과 학교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신 후 캠퍼스를 둘러보았는데 교문 옆 벽면에는 매직펜으로 휘갈긴 학교 당국에 시정을 요구하는 내용의 글씨들이 여럿 붙어 있었다.
저녁은 교토 시내 초밥집에서 먹고 예약해 놓은 시내 스튜디오에서 하루 묵었는데 일본 TV에 한국의 역사 드라마 '옥중화'가 '옥녀'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저녁에는 교토역으로 갔는데 교토역은 동서 간 교통의 중심지라 그런지 무척 크고 볼거리도 장난이 아니었다. 각종 식당과 쇼핑몰에다 저 멀리 휘황찬란한 타워도 눈에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교토역에서 기차를 타고 오사카 공항으로 이동한 후 비행기로 입국하였다.
이상 오사카, 교토 여행의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한반도는 남북으로 나뉘지만 일본은 동서로 나뉘어 동쪽이 도쿄 중심 관동(간토) 지방, 서쪽이 오사카, 교토 중심 관서(간사이) 지방이다. 관동과 관서는 사용하는 단어나 문화가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도쿄가 정치의 중심이라면 오사카는 상업 중심으로 일본 재벌 중에는 오사카 출신이 무척 많다고 한다.
일본이란 나라는 그 뿌리가 우리와는 다르겠지만 삼국시대 때 백제와 무척 가까웠고 백제가 몰락하면서 배를 타고 건너간 수만 명의 유민들이 일본의 지배층을 이뤘다고 한다. 백제 이외에도 신라나 고구려 사람들도 일본에 건너가서 각각의 세력을 형성하며 일본 문화에 편입되었다고 하니 어찌 보면 한일 두 나라는 무척 이질적이고 적대적이기도 하지만 한 꺼풀을 벗기고 들여다보면 동질적인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는 대한민국이 모든 면에서 일본을 쫓아가는 식이었다면 서서히 그 격차가 좁혀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꿈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