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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시장'이 뜨던 시절과 지금

by 최봉기

인간들이 사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온갖 부조리를 신랄하게 보여준 '인간시장'이란 소설에서 김홍신은 '장총찬'이란 정의의 해결사를 통해 80년대 초 암울했던 시절 갑갑한 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다. 김홍신은 실제로 인신매매를 하는 현장에 가서 실상을 확인하다 신변 위협까지 느꼈다고 한다. 그 소설은 당시 100만 부가 팔리며 소설로는 사상 처음 밀리언셀러의 기록을 세웠다.


'인간시장'은 인신매매, 제비족의 유부녀 성희롱, 복지원의 인간 노예화 등 그 시절 사회적인 문제가 되던 것들을 생생하게 다루었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그러한 일들이 관심에서 멀어져 버린지도 한참 시간이 지났다. 현재를 40여 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주인공 '장총찬'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이 투철한 현대판 '홍길동'인데 지금 그런 유형의 인물은 만화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의리'와 '정의감' 그리고 '의협심'과 같은 말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진입하기 전 개발도상국 시절 자주 인구에 회자되던 말이기도 했다. 못 살던 시절 건달들은 자신들이 생존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의리였는데 일반인들까지 다들 끈끈한 정으로 하나가 되어 어려울 땐 서로를 위로도 하고 기쁠 때는 축하도 하였다. 특히 그때는 정치적으로 암울한 때였기에 시민들이 말은 못 하지만 정의를 부르짖다 고생하던 자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당시로선 요원했던 민주와 정의가 기필코 실현되길 손 모아 빌었다.


그때와 달리 이제 대한민국이 민주화되고 선진국이 되어 1990년 이후에 태어난 우리 자녀 세대들은 과거 어려운 시절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은 사회의 정의나 민주화 대신에 '스토킹'이나 '보이스피싱'이 사회문제가 되며 이런 걸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온갖 관심이 모아진다.


이런 트렌드의 변화 때문인지 아쉽게도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조상 때부터 전통적으로 강조해오던 공동체 의식의 틈새로 개인주의가 비집고 들어와 위세를 떨치며 "나만 잘되면 되지 남이야 "혹은 "너나 잘해"와 같은 궤변이 판을 친다. 그러다 보니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워 공공장소에서 오랫동안 전화 통화를 하거나 큰소리로 떠들면서도 전혀 미안한 맘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자주 눈에 띈다.


현재와 소설 '인간시장'이 밀리언셀러가 되던 1980년 초와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세상이 바뀌어 버렸지만 자기 자신의 이익보다 사회의 정의를 부러 짖는 데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장총찬'같은 인물이 나오길 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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