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대개 규범적 혹은 이상적인 내용으로 현실에 바로 적용하긴 어려운 것들이란 생각이 든다. 칸트의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든지 혹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식의 내용은 무척 교훈적이고 인간적이지만 현실이란 무대에서는 사실 무거운 벽이 느껴진다.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인간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또한 세상에는 고상한 직업뿐 아니라 3D 업종도 있으며 힘들고 지저분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사회가 존립하는 것이지만 별 대우도 받지 못하는 일을 일부러 할 위인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학교교육은 무의미한 것인가? 어떨 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교육은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라기보다 올바른 삶을 살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교육의 목적은 '난 사람'보다는 '된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된다. 사실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이들 가운데 재주나 수완이 남다른 사람은 솔직히 학교교육의 무용성을 역설할지 모른다. 하지만 간혹 큰 집에서 고급 외제차를 몰고 돈을 물 쓰듯 쓰며 부를 과시한 이들 중 결국 교도소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1982년 권력을 사칭하며 어마한 금액의 어음사기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인 장영자가 바로 그 주인공일 수 있다. 그녀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거짓말을 잘하고 진실성이 없다"라고 나와 있다.
세상에서 남들과 경쟁을 하고 살면서 원리원칙만 따지고 융통성이 없다면 남들보다 잘 살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따라서 사는 데는 요령도 필요하다. 하지만 원칙도 없고 인간적인 구석이라곤 없이 속물처럼 산다면 그러한 삶은 개인 혹은 사회에 별 의미를 주지 못하리라 보인다.
세상은 갈수록 혼탁해지고 윤리기준조차 상실한 채 부초처럼 떠다니는 것 같아도 결국 올바른 인간과 올바른 삶에 대한 지침은 학교교육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 본연의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은 점점 찾아보기가 어렵고 연봉과 소유한 재산이 성공의 절대적 잣대가 되어버린다면 학교교육의 의미 자체가 사라지게 되지는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