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것들은 어떤 것이든 확인이 되어 뒤끝이 없고 탈도 없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확인이 어렵다. '염소 (cl)'란 화학물질은 눈이란 감각기관으로 볼 수 없지만 독성이 있어 무척 위험하다. 일본에서는 교수 자리를 탐내던 조교가 연구실에 염소를 지속적으로 뿌려놓아 교수를 사망케 한 일이 실제 있었다. 그런 행위는 독약을 타서 먹여 죽이는 것과 진배없지만 자칫하면 이유도 모른 채 덮이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이렇듯 확인도 어렵고 또한 보이는 것들에 비해 훨씬 무서운 힘을 가진다.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해 보고 만지고 듣고 냄새도 맡는다. 그런 건 동물이 가지는 본능적 차원의 것들이다. 개나 소나 말도 그런 감각을 통해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고 연명해 나간다. 인간도 눈이나 귀와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 생존을 하고 있지만 이것들과 차별되는 보이지 않는 보다 고차원적인 감각을 통해 차원 높은 삶을 영위한다. 우선 사고를 통해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며 존재에 대한 감사까지 할 수 있다는 건 동물과 확연히 차별된다.
이밖에 인간은 예술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어 생존 그 자체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그림이나 조각을 자신의 개성과 느낌으로 창조해 낸다. 그러한 결과물들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어 수천 년이 지난 후에도 가치를 이어간다. 인간은 또한 말과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한다. 말은 의사전달 외에 인간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말과 함께 글은 예술작품과 같이 창작물을 남길 수 있어 사후에도 많은 이들에 의해 읽히며 공유될 수 있다.
세상은 갈수록 발전하며 편리해진다. 먼 거리라 갈 수 없던 곳도 이제 비행기로 쉽게 갈 수 있다. 많은 시간과 노고를 들여 끙끙대던 일도 현재 컴퓨터를 통해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이런 급속한 변화와 눈부신 발전에도 인간의 본능적 감각과 차별되는 고차원적 감각은 오히려 발전은커녕 뒷걸음치는 모습을 보인다. 인간은 과거와 비교되지 않는 편리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지만 존재에 대한 인식과 감사 혹은 고차원적인 사고와 예술, 창작보다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는 본능적인 것들에 매달려 한 차원 위로 도약하지 못하는 걸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좋은 차를 몰며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이제는 '최고의 선'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최근엔 '깨달음'이란 말을 접하기가 무척 어렵다. 성숙할수록 인간은 보다 고차원적인 정신적 감각을 통해 세상의 감춰진 이치를 깨닫게 되며 그러한 것들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할 때 세상은 더욱 인간적이고 발전적일 걸로 보인다. 하지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 맡는 본능적인 감각에 치중하며 동물적인 욕구만 키우려 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욱 이기적이고 삭막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