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안정'과 '정의감'이란 건 별 관련이 없는 문제들로 보인다. 안정은 우선 의식주 문제의 해결, 하고 있는 일의 성공 정도나 만족도 등 현실적인 것들과 관련이 있지 삶의 철학이나 윤리관 등과 관련된 건 아닌듯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기본적인 생활에만 몰두하고 삶의 철학 자체가 없이 국가나 민족의 발전에 동참하거나 기여하지 못한다면 먹고사는 생활만 할 뿐 정신적 가치는 결여된 '단편적 삶'속에 갇힌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한 부류의 인간은 동시대, 같은 사회의 누군가가 경제적 혹은 사회적 문제로 인해 스스로 삶을 포기하더라도 나와는 무관하다고 신경 자체를 꺼버리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아닌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볼 때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며 조국이 해방되었지만 과거 일본의 자리를 미국이 자리바꿈하며 한민족의 올바른 역사관 확립이나 친일청산보다 '질서유지'란 명목으로 친일 경찰, 군인 및 관료들을 복귀시켰다. 그러자 덩달아 일제 때의 친일 인사들은 자신들이 독립투사였던 것처럼 과거 경력을 세탁하기도 하였다. 대통령 이승만조차 과거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을 마치 애국자처럼 칭찬했던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친일했던 인간들은 자신들 치부를 덮기 위해 자신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헌신해왔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들을 빨갱이로 몰며 친일과 반일이 마치 좌우의 문제처럼 변질되기도 했다.
그 후 미군이 철수하자 "이때다!" 하고 북에서는 소련의 전차를 앞세워 자체적 방어능력을 갖추지 못한 남한을 쳐들어와 불과 한 달여 만에 대부분의 지역을 손에 넣었다. 북에서 권력을 잡은 김일성은 일제강점기때 항일운동을 했던 인물이었기에 남한에서 친일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고 항일운동을 했던 동지들을 빨치산으로 몰아 지리산 등으로 내몰았던 당시 상황에서 남한을 정복해 이들을 구해준다는 것을 전쟁의 명분으로 삼기도 하였다. 하지만 연합군의 참전으로 한국전쟁은 많은 인명피해와 이산가족만 남긴 채 휴전으로 끝나며 아직까지 완전한 평화와 거리를 둔 채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
그 후 70년대 중반까지 북한이 남한을 경제적으로 앞섰다지만 냉전체제하에서 남한은 미국의 지원하에 경제개발의 성과를 통해 북한을 제치고 지금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북한은 갈수록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까지 핵에 올인하며 세계를 상대로 협박을 하지만 핵은 협상용 혹은 보유용 무기이지 실전용 무기는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먹고사는 단편적인 문제를 벗어나 대한민국의 상황을 역사적으로 성찰해 보았다. 주변에는 자격증이나 전문적인 지식으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이 마치 삶의 전부인 양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지 모른다. 이들은 돈을 벌어 고급 승용차와 아파트를 소유하며 자식을 유학 보내는 걸 성공적인 삶의 잣대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단편적인 삶의 또 다른 형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