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임인년이 호랑이 띠인데 내년이면 토키 띠, 후 내년이면 용띠가 되어 회갑을 맞이 할 인생의 동지들과 함께 지금까지 살아오며 공감할만한 것들을 머릿속에서 한번 정리해 본다.
우리가 태어나기 몇 년 전인 1961년 5월 16일에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2년 7개월 후인 1963년 12월에 대통령이 되었다. 그때 나는 세상이 어떠한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엄마 뱃속에 있었는데 다음 해 4월에야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해 태어나기 2개월 전에 개봉되어 크게 히트 친 영화가 '맨발의 청춘'이었다. 흑백으로 된 그 영화는 지금까지 수차례나 관람했는데 무엇보다 내가 태어나던 당시의 생활상을 좀 더 생생하게 알고 싶어서였다. 남산공원과 서울역 건너 파출소 등은 지금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아기를 지나 1970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했는데 다음 해 71년 4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 박정희는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전 69년 9월 3선 개헌을 날치기 통과시켰고 대통령이 된 후 72년 10월 '유신헌법'이 나왔다. 우리는 72년 초등학교 3학년부터 79년 고등학교 1학년까지 학교에서 사회 시간에 유신헌법을 배웠고 대통령은 의례히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뽑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또한 한문 시간에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한자를 열심히 학습하기도 했다. 괴수 김일성은 도깨비처럼 뿔이 달렸고 박정희는 민족을 구한 위대한 영도자라고 배웠는데 그 후 나 자신이 '세뇌교육'의 희생자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박정희의 장기 집권기인 1977년 중2 때 가을 어느 저녁, 과외 시간에 지금까지도 가까운 친구 하나가 과외하는 방에 있는 여학생을 놀래 주려고 폭음탄을 던져 쾅하고 터졌는데 하필이면 추석빔을 입고 온 여학생 치마에 떨어져 치마가 일부 타 버렸던 해프닝이 발생하였다. 과외 후 당사자와 과외 선생이 사과차 그 여학생 집을 들렀는데 그 여학생 부친은 웃으며 흔쾌히 이해를 해주시는 바람에 그 일은 잘 넘어갔다.
사춘기 때 이성에 호기심과 관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인가? 얼마 후 얄궂은 일이 또 하나 벌어졌다. 친구 둘이 과외를 마치고 집에 가다가 또 다른 한 여학생 집 문을 향해 멀리서 돌을 쾅 던졌다. 그리곤 집으로 갔는데 일이 약간 꼬여져 버렸다. 그 집에서 쉬고 있던 그 여학생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무슨 일인지 묻자 어머니께서 과외 같이 하는 남자애들이 장난치는 것 같다고 하시자 그 아버지는 화를 벌컥 내시며 과외 선생 집에 따지러 가서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때 영문을 모르는 과외 선생의 형이 방에 드러누워 쉬고 있는데 그 아버지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그 형 얼굴을 향해 손바닥을 날렸고 잘못 맞아 귀의 고막이 어떻게 되었다고 한다. 돌을 던졌던 두 친구는 태연하게 집에 갔다가 다음날 과외하러 가자 과외 선생이 목소리를 깔며 "어제 과외 마치고 무슨 짓을 했는지 얘기해봐.." 그일 이후 그 여학생은 과외를 그만두게 되었다. 한참 시간이 흘러 2013년 가을에 그 여자애랑 몇이 덕수궁 뒤편 정동에서 함께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얘길 했더니 약간 겸연쩍어했고 부친은 몇 년 전에 별세하셨다고 했다.
영화 '피 끓는 청춘'에서는 홍성농고에서 1982년 일어난 남녀 간 청춘 로맨스를 스토리로 한다. 20대도 아닌 10대 그것도 고교시절이 아닌 중학교 시절은 한마디로 피가 부글부글 끓는 시기이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강하지만 이성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서로 자연스럽게 얘기할만한 여건은 되어있지 않아 속만 끝없이 태우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 나이에 그때를 돌이켜 보며 지나간 추억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위의 두 사건 외에도 과외하던 곳 주변에서는 고등학생 몇 이서 공을 차다가 찬 공이 아래로 떨어져 주차된 승용차 앞 유리창을 깨면서 운전석에 앉아있던 사람을 사망하게 했던 황당한 사고도 있었다. 공을 찼던 사람은 경찰서에 연행되어 살인사건 관련 조사를 받기도 했는데 곧 풀려나왔다. 그 사람은 그 후 부산에서 DJ를 하다가 서울로 진출하여 음악 매 나지먼트 관련 일을 했는데 그 유명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을 키워냈던 매니저란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