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by 최봉기

올해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연초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인사를 하며 희망에 부풀지만 늘 12월이 되면 별 한 것도 없이 지나가는 것이 세월이요 인생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60여 년을 살며 보냈던 12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1982년 대학 입학 전 학력고사를 치른 후 한 달여 동안 보낸 12월은 60여 년 삶에서 무척이나 특별한 기억으로 머리에 남는다. 입시의 압박을 떨친 후 처음 가져본 어른이 된 기분은 짜릿하면서 야릇한 것이었다. 친구와 부산 시내의 커피숍을 처음 들렀을 때 나는 마치 별천지에 온 듯했다. 커피의 향, 음악소리와 함께 DJ 박스 속의 음반과 음악을 고르는 DJ 모습이 그러하였고 나도 어른들 사이에서 차를 마시고 어른 흉내를 낸다는 것이 또한 그러하였다.


10대까지 부모님 곁에서 편안히 살다 그 후 객지란 곳에서 생활을 할 때엔 겨울만큼 힘든 계절이 없었던 것 같다. 기온이 떨어질 때일수록 추위가 가슴속 깊이 파고들듯 나그네의 고독 또한 허전한 마음속을 마구 파헤치는 듯했다.


타향 서울에서의 대학시절 그리고 미국의 대학원 과정을 보내고 20대의 늦은 나이에 군에서 보내던 연말은 입시 생활을 떨치고 대학생이 될 때 잠시 맛보던 달콤함을 마치 영화 '박하사탕'처럼 시간을 거슬러 필름을 되돌려 보여주는 듯한 얄궂은 기분을 가져다준다. 군복과 계급 속에 묻혀버린 젊음의 개성과 자유가 서서히 말라가고 색깔이 바래짐을 느끼며 전역하게 된다.


후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아 가정을 꾸리며 30대 40대를 직장에서 보내고 50대를 거쳐 이젠 거울 앞에선 누님 같은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사실 타지에서의 또한 군에서의 고독의 뗏목을 타고 세월의 강물을 지나 표면적인 젊음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마음속 깊이 숙성시킨 심층적인 자유와 개성이 글을 쓰면서 가슴속 깊이 꿈틀댐을 느낀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느끼는 고적감과 허무함을 이젠 과감하게 날려 버리고 환갑이 된 나도 날개를 달고 창공을 향해 마음껏 날며 뒹굴고 몸부림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월드컵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