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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by 최봉기

가까운 친구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살아실 적 건설업을 하시면서 늘 당당하게 사셨던 분이셨고 아들인 친구도 부친의 기질을 닮아 늘 할 말을 하며 위풍당당했다. 주변의 어른들이 한분씩 우리 곁을 떠나는 걸 보며 해가 뜨고 지는 세상의 이치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일출의 장엄함이 있으면 그 건너편엔 일몰의 아름다움도 있다. 해방, 전쟁, 독제 항쟁 등 힘든 현대사를 몸소 체험했던 부모님 세대들은 자녀를 교육시키는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으셨다. 세계에서 대한민국처럼 교육열이 강한 나라는 없다는데 이는 최소한 자녀들에게만은 당신들이 겪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그 마음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경우 아직 부모님이 살아계신데 두 해 전 구순을 앞둔 부친이 아주 위독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실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는데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셨다. 당시 나는 내가 어린 시절 부친 슬하에서 어른이 곁에 계실 때 느꼈던 편안함과 안정감을 떠올려보곤 하였다. 약사이셨던 부친은 토요일 저녁에도 일을 하러 나가셨는데 비 오던 날 저녁엔 나가지 않고 집에 함께 계셨던 때마다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집에서 어른의 존재가 그렇게도 대단하니 결혼할 때 부모님이 계신지 여부, 안 계실 경우 언제 별세하셨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제는 나도 자녀를 둘 키우고 있고 다들 자라 큰애는 사회인이 되었고 둘째는 대학생이다. 머지않아 애들이 결혼을 해서 손자가 생기면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내가 틈틈이 써놓은 수백 편의 에세이를 통해 그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눠볼까 한다. 갈수록 세상이 물질화되고 이기적이 되어가건만 인간의 역사를 견인해온 것은 정신이지 물질일 순 없고 인간관계도 이기적이 될 경우 당장 편할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결국은 이기적인 세상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남는 사람이 있다. 남은 사람은 다시 바턴을 이어받아 가정과 사회를 또한 역사를 계승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부모님 세대가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이룩한 현재의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시키려니 막막하고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청출어람'이란 말처럼 남은 이들은 떠난 이들의 빈자리를 매우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좋은 빛깔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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