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로멘티스트의 삶
고인 영화감독 이만희의 삶
세상을 사는 스타일은 워낙 다양하여 각 기준별로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크게 보면 현실적 삶에 충실한 현실주의자와 몽상을 즐기는 로멘티스트란 상반된 삶의 형태가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현실을 벗어나기 어려워 대개 현실주의자인 경우가 많은데 몸은 땅을 밟고 있지만 생각은 저 하늘을 향하는 사람들이 로멘티스트들이다. 최근에 본 유튜브 동영상에서 그러한 인물을 접할 수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영화감독 '이만희'(1931~1975)이다.
이만희 감독은 60년대와 70년대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천재 영화감독이었으며 총 52편 영화 중 대표작으로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만추(1966)', '삼포 가는 길(1975)' 등이 있다. 이만희는 영화에 대한 재능과 열정으로 살다 44세에 요절했다. 딸인 영화배우 이혜영의 말에 의하면 어린 시절 제작한 영화가 좋은 반응을 보일 때엔 당시 부잣집에만 있던 자가용에 운전기사도 있고 살림살이가 여유로웠지만 제작된 영화들이 주목을 받지 못하며 집안이 기울어 부친이 버스를 타느라 주머니에서 차비를 꺼내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만희는 단아함과 요염함을 동시에 가진 배우 문정숙의 매력에 반해 자신의 영화 '다이얼 112를 돌려라(1962)'의 주연으로 등장시켜 당시 20만 명의 관객동원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또한 장안의 화제가 된 '만추'로 그녀를 톱스타 대열에 올렸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이만희는 영화제작 과정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상활고에 시달리며 이혼남이 되었지만 문정숙은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들의 관계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녀는 가정을 버리고 그와 같이 살다가 다시 헤어지기도 했다. 그 후 이만희는 23살의 나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영화 '삼포 가는 길' 주연이던 문숙과 재혼해서 살다 간암으로 4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간암의 원인은 폭주와 과로.
이렇듯 로멘티스트들은 가정이나 현실적인 부와 명예보다는 자신의 마음속에 늘 꿈틀거리는 예술혼을 좇아 끝없이 방황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다. 따라서 현실주의자의 눈으로 보면 약간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로멘티스트들은 가정에 충실하기보다 이혼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개성과 열정은 현실주의자들이 도무지 범접할 수 없으며 추구하는 방향 자체가 다르다. 나는 이만희의 만추(문정숙, 신성일 주연)는 현재 국내에 필름 자체가 없어 보지 못했고 김수용 감독의 만추(김혜자, 정동환 주연. 1982)와 TV문학관(김교순, 정운용 주연. 1986)의 만추와 김태용 감독의 만추(탕웨이. 현빈 주연, 2010)를 본 적이 있다. 낙엽 지는 가을날 우수에 찬 얼굴로 트렌치코트를 입은 중년 여성의 모습이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