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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삶의 스케치

by 최봉기

유튜브를 통해 80년대의 드라마를 보면 이제는 40여 년 전 세상의 모습이 눈앞에 다가온다. 소품도 의상도 커피숍이나 자동차 등 모든 게 지금과는 달라 보이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 시절을 살았기에 지금과의 차이가 바로 눈에 들어오지만 우리 자녀들은 상당히 생소해 보이고 어떨 때엔 마치 외국의 드라마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그때의 한옥에서의 생활과 비교할 때 지금의 아파트 생활은 얼마나 편리한지 또한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되지 않았던 그때는 얼마나 삶이 갑갑했는지도 현재 20대, 30대는 잘 모를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20대, 30대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이 하던 말씀들이 마치 다른 나라 얘기 같았다. 우리 출생 전 일어났던 한국전쟁, 4.19, 5.16 등 역사적인 사건들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렇듯 역사의 바퀴는 굴러가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 관련 지식이 너무 피상적인 것들이라 실제 생활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져서 역사 관련 책이나 방송의 역사기획물들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호패'라는 게 있었고 신라시대에도 다른 나라에 가려면 지금의 여권에 해당하는 뭔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극 '獄中花'를 보면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첩보원에 해당하는 '채탐인'이란 게 있었고 지금의 변호사에 해당하는 '외지부'라는 게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조선시대 때에는 서민들이 초가집에서 살았다는데 폭우가 며칠씩 퍼부으면 지붕이 세면서 방안에 물이 떨어지지는 않았는지도 궁금하고 그 시절엔 상투를 하고 머리를 매일 감지 않고 지낼 경우 머리가 간지럽지는 않았는지 또한 치약이 없던 시절 소금으로 입안을 헹구기만 해도 입안이 청결할 수 있었는지 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반대로 지금 아파트는 시멘트에서 독이 나와 실내의 공기가 나쁘다고 하는데 과거의 흙이나 통나무로 지은 집은 실내 공기가 좋아 아침기상 때 기분이 상쾌하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그런 집에서 한번 자보고 싶기도 하다.


세상은 갈수록 편리해진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은행 업무를 일일이 주판으로 계산해 수기로 처리했고, 열차나 버스 예약도 직접 역에 가서 줄을 서서 했던 때로 돌아간다면 생활 속의 스트레스 지수가 천정부지로 솟을 것이다. 여름에 냉장고가 없어 얼음창고 앞에 줄을 서 얼음을 사서 집까지 땀을 흘리며 가져가고 에어컨도 없이 더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와 부채로 삼복더위를 견뎌야 했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그리 보면 현재의 생활은 그때와 비교하면 마치 천국에 와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끔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가 마지막 신에서 "나! 과거로 돌아갈래!"라고 외치듯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때는 다들 부족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김장김치나 돌 혹은 백일 떡을 서로 나눠먹었고 버스에서 노인이나 약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이 있었다. 또한 은퇴한 어른들은 고생해서 키워놓은 자식들에게 생활비나 용돈이라도 타서 살 수가 있었다.


溫古知新이란 말처럼 새로운 것을 습득하더라도 옛것은 알고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것들이 가정교육을 통해 나름 자식들에게 자연스럽게 전수가 되었는데 요즈음은 그런 얘기를 꺼내면 꼰데가 되고 그런 말도 잔소리가 되어버리니 이 또한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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