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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순환의 고리 끊기

by 최봉기

불황이 되면 소비가 움츠려 들어 기업 매출이 줄면서 투자도 위축되고 다시금 소비, 매출, 투자가 연속 감소하며 경제가 어두운 터널에 진입하는 악순환이 진행된다. 그러다 어둠 속에서 섬광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며 다시 소비가 살아나고 돈벌이도 되면서 기업들도 투자에 나서게 되니 고용도 늘며 다시금 소비, 매출, 투자가 살아나 경제에 봄바람이 부는 선순환으로 간다.


경제뿐 아니라 가정도 그러하다. 가장이 좋은 직장에서 일하거나 혹은 사업을 해서 잘살고 안주인도 살림에 충실하며 자녀들도 공부를 잘해 안정적인 생활 속에서 손자도 생기면 집안에 웃음이 가득해지는 선순환이 되는 반면 가장이 하던 일이 잘 안 되고 건강에도 빨간 불이 들어와 병원신세를 지거나 혹은 급기야 세상을 떠난다든지 혹은 부부관계에도 금이 가고 설상가상으로 자녀들까지 말썽을 부릴 경우 집안도 악순환 속에서 풍비박산이 된다. 이렇듯 세상 일은 하나씩 연결고리가 있어 마치 운동경기처럼 좋은 일은 좋은 흐름으로 이어지지만 좋지 못한 일 또한 나쁜 흐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경우 자칫하면 삶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변의 위로나 도움 등 인간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나는 비교적 큰 고생 없이 육십 평생을 지내온 유복한 사람이지만 더러는 가정에서 가장이 사업에 실패했거나 세상을 빨리 떠나는 일로 배우자나 장남이 가장 노릇을 하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중학교 때 만난 과외선생 한분은 과외를 생업으로 하며 지냈다. 그는 성인이 되기 전 부친이 세상을 떠나셨고 모친께서 가족을 부양하느라 공장에서 만든 전기 프라이팬 등 가전제품을 가가호호 방문해 팔며 생고생을 했는데 장남인 본인이 대학에 진학해서는 가장 역할을 하느라 과외에 올인했다. 그 후 과외 학생수가 늘며 생활이 차츰 안정되어 갔는데 대학졸업 후에도 취업 대신 과외로 생활하였다.


또 하나의 경우는 부친이 힘든 일을 하시다 그만두고 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대신 모친이 허드렛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는데 큰 아들이 공부를 잘해 치대에 입학하여 의사가 되면서 집안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집의 모친은 우등생이던 큰 아들을 보며 온갖 어려움을 꾹 참아내고 지내셨는데 간간이 하시던 말씀이 "내가 너를 키워 무슨 득을 보려는 게 아니라 과거에 공부로 못 푼 한을 푼다"라고 하셨다. 그 댁 모친은 두뇌가 좋은 분이셨는데 시골에서 어릴 때 여자가 공부해서 뭐 하느냐고 공부를 못하게 했다고 한다.


위의 두 사례는 가정을 책임질 가장이 세상을 빨리 떠나거나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 배우자가 가사는 물론 가족부양에 나서고 장남도 총대를 메고 학업 이외에 자신을 희생해 과외까지 해서 가정을 돌보며 고군분투해 결국 역경을 극복하는 모습이었고 또한 치대 진학을 통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눈물겨운 휴먼 스토리이다. 만일 처지를 비관해 자칫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넋두리만 하고 자구책을 강구하지 못한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 채 계속 허덕일 수도 있다.


해방 후 전쟁을 겪으며 삶이 나락에 빠질 때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난이 대물림 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며 자녀교육에 매진한 결과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역경이 닥칠 때 주변에서도 그 역경을 벗어나려 묵묵히 노력하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불평만 하고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도와줄 마음도 생기지 않는 법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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