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대학원까지 거치며 만난 은사들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 현재 대부분은 은퇴, 일부는 별세한 경우도 있다. 20여 년 전 'TV는 사랑을 싣고'란 프로에 탤런트 이경진이 나와 과거의 은사를 찾았는데 결국 뵙고 싶어 했던 은사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이경진이 그때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나도 그 방송을 보며 문득 생각나는 은사 한 분께 전화를 드린 적이 있었다. 내가 전화를 드린 은사는 별생각 없이 나랑 통화를 하셨겠지만 나로서는 영원히 뵐 수는 없다는 간절함이 나름 묻어 있기도 하였다.
나의 기억 속에 약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은사는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그리고 고등학교 때 한분 정도 계신다.
봉래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을 맡으셨던 모만규 선생님은 한참 전에 세상을 떠나신 분이다. 그분은 나의 기억 속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애들을 때리는 경우가 없었고 못 살거나 별난 친구들 그리고 잘 살거나 공부 잘하는 친구들을 차별 없이 대해 주셨던 연륜이 있고 나름 인격을 갖추신 분이셨다. 한때는 자신이 정문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애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던 호랑이 선생 시절도 있었지만 그런 식의 교육은 별 의미가 없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갈 때 같은 반에서 사정이 안 좋아서 함께 여행을 못 간 친구 몇몇에게 불국사 사진이 있는 책받침을 사 와서 나눠주셨던 기억이 있다. 사실 나는 그 선생님으로부터 그다지 칭찬을 받지 못하였다. 그분이 보기에는 내가 다른 친구들을 비꼬우기도 하며 마음 한편에 비뚤어진 데가 있다고 보셨는데 사실 그때 나는 이기적이며 그런 지적을 받을 행동도 했었다고 느껴진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이지만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기도 한다. 당시 나는 성당에서 복사라는 걸 하며 신앙 활동도 했는데 그 선생님은 암만 성당에서 그런 걸 해도 자신의 마음이 올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지금도 마음속으로 그 의미를 새기고 있다. 역시 연륜이 있는 교육자는 제자가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혜안이 있으셨다고 생각한다.
덕원중학교로 진학을 하자 담임을 맡으셨던 분이 국어 담당 안영훈 선생님이셨다. 젊고 성격이 원만하며 다재다능하셨는데 탁구, 당구, 야구, 하모니카 등 못하는 게 없으셨다. 내가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편지를 보내어 "그때 한 반의 친구들이 다시 교실에 모여 앉아 선생님과 웃으며 수업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공부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러 인사를 드렸더니 답장을 보냈는데 받았는지 물어보셨다. 뭐가 잘못된 건지 답장은 받지 못했다. 선생님 말씀이 내가 보낸 편지를 아침 조회 끝나고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모두 돌려가며 읽었다고 하셨다. 위에서 TV를 보며 전화를 드린 분이 바로 이분이셨다.
대동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여 사방팔방 대학입시란 포장 속에서 생활을 하는데 젊고 깐깐했던 교사가 남다른 소신으로 정의를 부르짖었다. "학교에서 이 따위로 하는 놈들이 사회에 나가면 부정부패나 해 먹고 잡히면 재수가 없어서 잡혔다고..". 그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고 2, 3 때 담임이 되셨다. 과목은 1, 2학년 때 한문 3학년 때엔 고문. 칠판 글씨는 명필 수준. 대충이 아닌 확실한 걸 좋아하다 보니 신경질적인 데가 있었고 나름 수첩에 살생부를 넣어두고 있다 보니 싫어하는 친구들이 있기도 했지만 의욕과 성실성 면에서 본다면 나무랄 데 없는 교사였다. 계성여중 출신 초등학교 동기 몇몇은 중학교 때 그분에게 국어를 배우기도 하였다. 그분은 명문 경남고 출신으로 실력도 뛰어났던 편인데 늘 인간을 강조했던 교사였다.
지금까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은사 몇 분에 대한 기억을 스케치해보았다. 세상은 갈수록 정의롭고 인간적이기보다 이기적이고 혼탁해지는데 학창 시절 때만큼 때 묻지 않았던 때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올바른 인간을 만들기 위해 쓴소리와 회초리로 지도 편달해 주신 은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인간이지 않을까? 바쁜 일상에서 지내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하직하셨다는 은사들 소식을 접할 수 있다. 마음속에 감사함을 가지는 은사가 있다면 혹여나 그리되기 전에 한번 정도는 감사하는 맘을 담아 안부라도 전하는 게 바람직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