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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갑갑한 굴레 벗어나기

by 최봉기

인간은 살면서 만족이란 정점에는 도달하기 어려운 아쉬움 속의 존재가 아닌가 싶다. 마음 같아서는 지겨울 정도로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끝없이 꿈을 펼치고 싶지만 인간의 수명이 무한한 게 아니다. 특히 젊을 때엔 시행착오 속에서 헤매고 세상을 좀 알 것 같아 뭘 좀 해볼까 하면 이젠 몸이 슬슬 말을 듣지 않는데 급기야 질병이란 암초에 항해하던 배가 부딪혀 가라앉는다. 그리하여 세상을 한 손으로 호령하던 영웅도 변변히 힘을 쓰지 못하고 쓸쓸히 눈을 감기에 '최고 만족의 삶'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주변에서도 "잘 살다 간다"는 말 외에 별 할 말이 없다.


그런 식으로 이왕 포만감을 만끽하지 못하는 게 인생이라면 어지간이 먹고 스스로 수저를 놓는 게 현명하지 않나 싶다. 세계적인 위인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이 기억난다. "인생은 아름답다"와 "인생은 아쉽다"이다. 전자가 괴테의 유언이고 후자가 칸트의 유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공감이 간다. "인생이 아름답다"는 유언은 갑갑하기만 한 인생을 오히려 미화시킨 느낌이 든다. 그 정도로 평생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을 가졌다면 문학이란 꽃밭에서 꽃향기에 취해 살 수 있는 영광을 누렸을 것 같기도 하다. 낭만적이 아닌 사실적인 눈으로 본다면 결국 인생은 아쉬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렇듯 한정된 삶을 사는 인간이 감수해야 할 또 하나의 구속이라면 성인이 되기 전까지 기성세대들 입맛에 맞춰진 삶의 틀속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점이다. 그러다 이제 남들 눈을 별 의식하지 않아도 될 연륜이 되면 뒷선으로 물러나야 하는 게 또한 인생이기도 하다.


그럼 이러한 삶의 굴레 속에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게 바람직한 건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왕 인간은 끝없이 흡족하게 살지도 못할 바에 차라리 윈초적인 본능대로 마음껏 쾌락이라도 실컷 누려볼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 돈이나 시간이 풍족하다면 맛난 걸 원 없이 먹고 좋은 곳을 원 없이 다니고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 원 없이 애정행각이라도 벌여보는 것이다. 실제 이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로마 황제 네로, 조선의 연산군과 대한민국의 일부 재벌총수이다. 하지만 결국 이들에게 찾아온 것은 기쁨 대신 파멸이었다. 인간의 욕망이란 건 절제 없이 마구 채우려 할 경우 오히려 인간이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결국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가져야 하는 자세라면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욕망이라면 끝없이 탐하기보다 그 일부를 누군가에게 양보하는 것도 문제해결의 역발상일지 모른다. 그런 마음을 흔쾌히 가질 수 있다면 유한한 시간과 욕심이란 굴레에 갇혀 갑갑했던 마음이 뻥 뚫리며 새로운 삶의 태양이 밝게 비취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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