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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의 반성

by 최봉기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건 현실에 대한 인식이며 이와 함께 필요한 것이 과거에 대한 반성이다. 과거 잘못된 일들은 우선 하나에서 열까지 까발리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걸 정당화한다든지 올바른 것을 마치 잘못된 걸로 모함한다면 세상에 정의를 위해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수할 사람은 존재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자기 하나 편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이 판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며 주권을 빼앗긴 후 오랜 기간 일본의 지배를 받을 때 일본에 충성했던 자들은 호의호식했고 정의감을 가지고 독립을 부르짖던 자들은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는 세상을 지네 손에 넣으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패망하여 급기야 조국은 해방이 되었지만 해방 후 8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아직도 웃기기만 한 건 일제의 개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의의 사도로 둔갑해 있고 독립을 위해 개인의 안위뿐 아니라 가정까지 버리고 헌신했던 이들은 무능력자 혹은 빨갱이가 되어있기도 하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승만까지 독립운동을 하다 잡힌 사람들을 잡아 상상 못 할 고문을 한 공으로 무학력에 경찰 최고위직까지 올라간 노덕술이란 인간을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훈장까지 수여했던 일이 있다.


학교에서 우리말을 하기만 해도 벌을 받던 일제강점기 때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은 전체인구의 극소수였으리라 짐작된다. 다시 말해 대부분은 일본이름에 일본말을 썼고 일본 사람처럼 지내면서도 잘못되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배급도 받을 수 없었다고 하니 일본에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 나무랄 수 없는 실정이었다. 그럼에도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이었다면 지금이라도 국가차원의 예우가 필요하다. 게다가 살기 위해서의 차원을 넘어 일본의 개를 자처하며 의로운 일을 했던 이들을 잡아넣고 괴롭혔던 자들은 밝혀내어 국가차원의 불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한 가문의 후손이라면 장사꾼은 몰라도 국가지도자가 될 자격은 없다고 생각된다.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들은 국가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유해발굴이나 유족 보상 등 국가차원의 각별한 배려가 있다고 한다. 정의로움이 덮이고 비굴함이 정당화되는 국가라면 겉으로 멀쩡할지 몰라도 속으로는 썩어 들어가는 나라임에 분명하다. 병역이란 문제도 이와 맥을 같이 할지 모른다. 갖은 수단을 동원해 병역면제를 받은 자는 '신의 아들'. 보충역 판정을 받은 자는 '사람의 아들', 현역 판정을 받으면 '어둠의 자식들'이라 불리던 풍조가 이를 대변한다.

대한민국의 국가지도자가 될 사람이라면 병역 측면에서는 깨끗한 인물이길 기원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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