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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도남 윤형주

by 최봉기

신종어 '까도남'은 까칠한 도시남자의 줄임말인데 까도남의 대표적인 연예인이 가수 '윤형주'가 아닌가 싶다. 그는 60년대 후반 송창식과 함께 남성 듀엣 '트윈폴리오'의 멤버로 노래하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내가 트윈폴리오 음악을 즐겨 들었던 건 트윈폴리오가 해체된 지 10여 년이 지난 고 2 때 가을인 1980년이었다. 그들의 '하얀 손수건', '웨딩케익', '축제의 노래'와 같은 곡들은 감수성이 한참 예민했던 시절 나의 가슴속을 때로는 꿀처럼 감미롭게 때로는 고적하고도 쓸쓸하게 파고들었다.


나는 윤형주와 같은 미성과 도회지형의 말쑥한 외모보다는 흙냄새 나는 시골의 바람과 맑은 시냇물 같은 송창식 같은 스타일을 좋아했다. 그런 이유로 트윈폴리오의 음악을 들을 때도 화음이 있는 소절이라면 몰라도 윤형주가 단독으로 부르는 소절은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후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윤형주라는 한 인간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사라지고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윤형주는 경기고를 졸업한 수재로서 연세대 의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는데 대학 재학 중엔 공부보다 팝송 등 음악에 심취해 살벌한 경쟁이 펼쳐지는 의대에서 제대로 공부를 해내지 못했다. 그러자 집에서는 난리가 났고 그로 인해 부친과의 갈등도 커졌다. 그 후 차선책으로 부친이 재직 중이던 경희대 의대로 편입하지만 거기서도 학업을 마치지 못한 채 결국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통념상 명문대를 나와 의사와 같이 누구나 인정해 주고 안정적인 직업인이 되는 게 딴따라라 불리는 가수가 되는 것보다는 품위도 있고 실속도 있는 일이건만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말처럼 그는 의사보다는 가수가 될 팔자였던 것 같다.


그가 가수를 하며 인기를 누릴 땐 월수입이 대학학장이던 부친의 4배나 되었고 당시 20대에 부의 상징이던 자가용에 기사까지 둔 풍족한 생활을 했다. 그러다 대마초 사건으로 방송출연이 금지되고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때 자구책으로 시작한 게 CM송 제작이었다. 그는 음악 경험을 살려 CM송 전문 광고회사를 설립해 총 1,400여 곡의 CM송을 작곡했는데 현재 시중에 나온 전체 CM송의 약 1/3이 그의 손을 거친 것이라고 한다. 특정 상품은 CM송을 통해 년 매출이 수백억씩 증가하기도 했다.


가수 윤형주의 이미지가 겉으로는 자기중심적이고 여성친향적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한다. 그는 꽤 남성적이고 의리도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함께 음악을 해왔던 김세환의 말에 의하면 윤형주는 양주를 마시면 한 병을 다 비워버린다고 한다.


또한 일부 지인의 말에 따르면 혼자서 건달들 몇 정도는 쉽게 제압할 실력이 된다고 하며 쎄시봉에서 일할 때 그는 명동의 신상사파도 건드릴 수 없는 절륜의 주먹이었다고 한다. 그가 업소에서 가수로 일할 때 급여일만 되면 찾아와 테이블 위에 손도끼를 올려놓는 건달이 있었다고 한다. 그건 급여의 일부를 알아서 가져오라는 제스처였다. 그쯤 되면 대부분 알아서 상납하는데 윤형주는 당당하게 "당신이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흉기를 가지고 와서 사람을 협박하시오?"라고 맞받았다고 한다.


그 밖에도 후배 양희은이 한때 암에 걸렸을 때 그는 지인들을 찾아가 모금한 돈을 전달했는데 그 액수가 1억 정도에 육박했다고 한다. 윤형주는 '사랑의 집짓기 자원봉사'에 나서기도 하고 국제 해비타트 한국 이사장도 맡고 있다고도 한다.


지금껏 까도남의 대명사인 가수 윤형주의 삶을 스케치해 보았다. 내가 윤형주란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진정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간 자유인이란 사실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기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기 좋아해 벌써 지구의 120바퀴를 비행기로 누볐다고 하는데 만일 의사가 되어 좁은 공간에서 하루에 수십 명의 환자 보는 일을 했다면 아마 감당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그가 부친의 바람대로 의사란 사회적 통념을 따랐다면 안정적인 삶이야 살았겠지만 음악을 하면서 느끼는 정도의 행복에는 도달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또한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있기에 그 행복을 서로 공유한다는 사실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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