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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와 같은 인생

by 최봉기

환갑을 앞둔 지금 살아온 과정을 회고할 때 삶은 신나기보다 무미건조할 뿐 아니라 위로 한번 올라갔다 금방 아래로 내려가는 시이소 놀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갈 때 혹은 운동회를 할 때엔 한참 전부터 마음이 들뜨기 시작하며 신나는 시간을 보낼 생각에 마냥 행복에 겨워한다. 소풍 전날에는 가게에 가서 맛있는 과자도 사고 당시 평소에는 먹기 어려운 김밥을 먹을 생각도 하면서 삶이 마치 무지개와도 같아 보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라 금세 일상으로 돌아올 때엔 허무함이 순식간에 밀려온다.


명절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추석이나 설이 되어 새 옷을 사고 어른들이 제사 음식을 만드는 걸 보면 신이 나지만 명절 하루가 저물어 해 질 녘 평상복으로 갈아입을 때엔 모처럼 들떴던 기분이 한순간 식어버리고 또 다른 허무함이 밀려온다.


이밖에도 기분이 들떴다 이내 허무해지는 경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군복무 시절 오래간만에 휴가를 나갈 때는 며칠 전부터 마음이 들떠 나가서 뭐 할까 하는 생각에 잠이 잘 안 오기까지 하고 부대 문을 나설 때는 마치 구름 위에 떠있기라도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귀대할 날이 다가올수록 가슴속이 얼어붙기 시작하다 드디어 부대 위병소 앞까지 오면 그동안 누리던 자유로움과 기약 없는 이별을 하며 순간적으로 허무함이 밀려온다.


청춘남녀가 만나서 사랑이 싹틀 때엔 온통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인다고 해서 나온 노래가 에디트비아프의 '장밋빛 인생'이다. 그러다 결혼을 하면 자녀가 생기니 장밋빛은 사라지고 자녀가 독립할 때까지 때로는 노랗기도 까맣기도 해진다.


세상일이 워낙 그런 식이다 보니 삶 자체가 허무한 것이라 삶에서는 뭔가 특별한 기쁨과 행복을 맛보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특히 머리에 든 게 많은 사람일수록 더 그러할지 모른다. 하지만 허무함에서 완전히 해방되기야 어렵겠지만 고독한 허무주의자가 되기보단 수시로 찾아오는 허무를 최소화하는 것도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길이 아닐까 싶다.


위에서 예로 제시한 학창 시절의 소풍, 수학여행이나 운동회를 비롯 군복무 때의 휴가와 연애의 경우도 롤러코스터 타듯 절정을 간직하려다 아쉬움만 키우기보다 담담하게 이를 추억으로 간직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 벌거벗고 세상에 나와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의 주연배우로 생의 기간 동안 연기를 하는 것이라 해도 그리 틀린 얘기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삶'이란 영화에 캐스팅되어 영화 속의 여러 장면에 등장해 소품과 의상을 갖춰 연기를 한 다음 가진 것 입은 걸 모두 던져놓고 안개처럼 묵묵히 사라지는 영화 '헤어질 결심'의 엔딩신을 떠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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