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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의지할 제3의 대상

by 최봉기

인간이 사는 삶은 고적하기 짝이 없다. 인생 자체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고 '하숙생'이란 노래에서도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라고 하지만 황무지와 같은 삶이고 오래 살아봐야 80년이라 한다면 주변에 자신 외에 의지할 대상이 있는 게 바람직하리라 본다. 그중 으뜸은 가족이고 그다음이 친구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밖에 제3의 대상을 하나 추가한다면 그게 무얼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 있을 듯싶다. 그것이 이성일지, 학문일지, 예술이나 문학, 신앙, 돈, 권력일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우선 이성에 의지하는 경우이다.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도 어디선가에서 새로운 이성을 찾는 경우를 왕왕 본다. 처자식이 있는 사람 중에 그럴 수 있는 경우라면 모름지기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자일 것이다. 하지만 가정을 두고 몇 집 살림을 동시에 하거나 다른 이성과 밀애를 할 경우 대개는 결과가 좋지 못하다. 졸지에 이혼을 하게 되기도 하고 돈이 많다고 해도 결국 가족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도 한다. 또한 밀애 한 사람은 잠시는 몰라도 부부처럼 오래가지는 못하기에 결국 불장난하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게 되리라 보인다.


만일 독신이라면 이성을 만나는 것이 외로움을 이겨내는 그럴듯한 대안이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정상적인 부부가 아닌 남녀관계는 그리 오래가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자녀도 있고 양육과정에서 부부간 사랑이 성숙해지고 단련되기에 무늬만 부부인 경우와는 크게 다를 것이다.


학문에 의지하는 경우는 예술이나 문학을 동반자로 삼는 것과 비교적 유사할 걸로 보인다. 잠자고 밥 먹는 시간 외엔 학문에 매달려 훌륭한 논문을 쓰거나 훌륭한 그림과 시 또는 소설을 창작하는 것도 나름 멋있어 보인다. 이런 종류의 일은 아무나 따라 하기 어려운 것이라 타고난 재능과 기질 그리고 열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대상에 의지한다면 삶의 무료함도 덜 수 있고 정신적인 풍요로움도 가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돈과 권력을 동반자로 하는 경우도 그 자체가 잘 못되었다고 보긴 어려울지 모르지만 자칫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 돈이 있으면 또한 권력이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어찌 보면 착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꽤 많다. 인간의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은 돈이 암만 많아도 살 수 없다. 돈보고 곁에 있는 사람은 사람이 좋아서 있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신앙을 제3의 동반자로 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새벽에도 절이나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천주교 신자들 중에는 지하철에서도 묵주를 꺼내어 눈을 감고 기도를 하기도 한다. 인간이 약하고 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짐에 따라 하느님 혹은 성모마리아에게 의지하며 살기도 한다. 눈감고 절대자에게 기도를 할 경우 마음속 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신앙의 본질에서는 멀어질 수도 있다. 기복신앙은 매우 이기적인 신앙이란 생각이 든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라면 몰라도 자기와 자기 자식만 잘 되길 비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또한 삶의 문제는 삶 속에 해답이 있는 것이지 어디 다른 곳에 숨겨놓은 특별한 답이 있는 건 아니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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