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의 생신이라 오랜만에 부모님이 계신 곳 근처부산 시내의 식당에 가족이 모여 점심을 함께 하고 경주로 이동해 같이 하루 밤을 보냈다. 콘도의 숙소 문을 열자 눈에 들어오는 호수의 모습이 마치 그림과도 같았고 모처럼 가족과 함께 좋은 곳에 있다는 기쁨이 밀려왔다. 함께 저녁을 먹고는 모처럼 어머니랑 고스톱을 치며 즐거운 시간도 보내었다. 노인들은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한 번씩 화투판을 두드릴 때엔 무척이나 재미가 있으신 모양이다. 내가 어릴 때엔 모친과 같이 화투라도 치며 어울리던 분들이 주변에 더러 계셨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못해 가족이 모일 때 말고는 그런 재미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결혼 전엔 늘 함께 喜怒哀樂을 나누던 가족이었건만 다들 분가하여 이렇듯 특별한 날에만 함께 얼굴을 보며 지내고 있다. 몇 년 전엔 부친이 갑자기 신장이 악화되어 입원하셨고 병원에서는 곧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 후 투석치료를 통해 건강이 많이 회복되셨다. 콘도에서 조식 뷔페를 잘 드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흐뭇했다.
사우나에서 함께 목욕을 할 때엔 앙상한 부친의 등과 신체 곳곳을 힘껏 밀어 드렸는데 앞으로 또 얼마 동안이나 이렇게 같이 목욕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주변의 친구들 가운데 최근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주변에 나처럼 양부모가 함께 살아 계시는 경우도 많지는 않아 나 자신은 무척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그 행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주로 객지에서 지냈기에 가족들과 줄곳 떨어져 있었고 한 번씩 집에 내려가 어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곤 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나도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고 취업을 한 아들도 하나 있다. 아들은 얼마 전 연말 보너스 받은 걸로 내 핸드폰을 새 걸로 바꿔주었다. 어릴 때엔 잔소리만 퍼부었던 아들이건만 어른이 되니 어젓해지고 효자 노릇도 한다. 아들과 대학생이 된 딸 그리고 애 엄마가 함께 여행을 가서 지낼 때의 기쁨은 어린 시절 부모님과 형제들이 함께 어울릴 때의 기쁨을 재현하는 듯하다. 이렇듯 인간은 가정이란 울타리 속에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행복이란 선물을 사는 동안 누리는 존재란 생각이 든다.
노부모와 함께 하는 행복이든 자식들과 함께 하는 행복이든 일단 건강하고 경제적인 안정이 어느 정도는 따라줘야 가능한 것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돈이 있고 건강했던 한 사람이 자기를 평생 양육하고 교육시켜 준 부모를 늙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아내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의 모친은 생모였고 부친인 나의 작은할아버지는 재혼을 했던 그의 어붓 아버지이긴 했지만 어려운 처지의 그를 친자식처럼 대학까지 공부시켜 준 분이었다. 내가 대학시절 그 댁을 들렀을 때 노부모에게 차려준 밥상을 보니 콩나물국에 김치와 밥이 다였다. 그 할아버지는 며느리가 반찬을 식탁 위에 놓고 황급히 나가자 분노에 가득 차 "이 노무 자식들!"하고 진노했다. 그 후 그 노부부는 엄동설한에 작은 아들 집으로 짐을 옮기게 되었다.
노부모와 함께 또한 자식과 함께 하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선물이다. 하지만 그 행복 속에는 보이지 않는 땀과 눈물이 깃들어 있다. 또한 그 행복이란 것도 잠시일 뿐 영원할 수는 없다는 걸 생각하면 얼마 사실지 모르는 애들 할아버지, 할머니를 내가 어떤 마음으로 모셔야 하는지가 명쾌해진다. 그 이유는 나의 노부모가 나로 인해 가지는 기쁨 혹은 슬픔은 곧 내가 노인이 될 때 내가 자녀로 인해 갖는 기쁨과 슬픔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