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인간은 자신이 처한 형편에 따라 태도나 행동이 달라진다. 하는 일이 잘 되고 형편이 좋을 때엔 당당해지고 진취적이기도 하지만 하는 일이 잘 안 되거나 형편이 어려울 경우 여유가 없고 의기소침해진다. 삶 자체가 'Up and Down'이므로 이런 식의 삶의 환경변화는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기도 하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취임식 때에는 희망에 가득 찬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레임덕이 오고 물러날 때가 다가오면 그 당당함이 슬슬 초조함과 두려움으로 바뀐다.
사업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업이 잘 되면 은행계좌에 현금이 가득하고 희색이 만면하지만 사업이 곤두박질 칠 경우 급전을 구하러 다니기 바쁘다. 이젠 고인이 되신 가까운 친구의 부친은 사업을 하시며 한때 사업이 잘 될 때엔 동기동창이던 은행 지점장의 지점에 예금 수신고를 많이 올려줬다는데 사업이 부도가 난 후 대출을 받아 새롭게 사업을 일으키려 똑같은 친구에게 갔을 땐 문전박대를 받았다고 한다. 성격이 불같은 분이시라 지점에서 노발대발하셨다고 한다. 그 후 다른 사람들에게 하셨다는 말씀이 "의리라고는 없는 놈, 맞아도 싸!"였다
고교시절 대학입시에 낙방한 선배들이 재수를 하고 모교에 입학원서를 쓰러 올 때 당시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학창 시절 호탕하고 리더십도 있던 멋진 친구들이 입시에 한번 떨어졌다고 기가 푹 죽어 초라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러한 모습은 S대를 진학한 사람들이 모교를 방문할 때의 의기양양한 모습과는 크게 대조가 된다. "사실 S대를 들어간 사람들이 학교 때부터 리더십이 있어 그런가요? S대 배지가 사람을 그리 만들어 주는 겁니다." 결국 처지가 어려울 때라도 기죽지 말고 일부러라도 자신을 치켜세워야 한다는 것이 담임선생님의 주장이었다.
청춘 남녀의 경우도 서로 순수한 마음으로 만나 사랑할 때엔 '장밋빛 인생'이 된다. 늘 가까이 또한 하루가 바쁘게 전화나 편지가 오가지만 남자가 군복무를 하게 될 경우 "Out of sight, Out of mind"란 말처럼 여자의 사랑이 식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온전하고 제대로 된 사랑이라면 군복무가 아니라 전쟁까지도 별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 보인다. 남자의 형편이 달라진다고 쉽게 마음을 바꾸는 정도의 여자라면 군복무 기간 동안 미리 골치 아픈 충치를 하나 정도 빼버리는 것도 하늘이 준 기회일지 모른다.
이렇듯 인간이 사는 동안 늘 처지는 바뀔 수 있다. 태어나서부터 세상과 이별할 때까지 꽃길만 걷는 사람은 흔치 않다. 만일 그러하다면 그런 사람은 '괴테'의 말처럼 인생을 논할 가치가 없는 사람일지 모른다. 처지가 어려워지면 누구나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해진다. 하지만 처지는 예금 금리처럼 고정된 게 아니라 주가처럼 등락을 거듭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간은 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뛸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사정이 좀 어려워진다고 크게 비관을 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본래 그렇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비굴해지는 경우도 있다. 고인이 된 한의원을 하던 친구 하나는 처지가 힘들어지자 한방에 만회를 한다고 무리해서 서울 시내 한복판에 큰 규모로 한의원을 개원하였다. 나는 장인어른이 오십견으로 고생을 하시기에 모시고 그 한의원에 간 적이 있다. 전화로 먼저 문의를 하자 그는 한 번만 오면 바로 완치가 된다고 호언장담하길래 몇 번 가서 한방주사를 맞고 시술을 했다. 그리고 치료비를 물었더니 아는 사이에 할인은커녕 상상외의 터무니없는 액수를 요구했다. 당혹스러웠지만 계산을 했는데 치료효과도 별로 없었다. 그 후 시내에서 그를 본 적이 있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피하려는 기색이 완연했다.
처지가 조금 괜찮다고 오만해지거나 조금 어려워진다고 아예 다른 인간이 되어버리는 건 바람직한 모습이 절대 아니다. 어찌 보면 형편이 좋을 때엔 오히려 주변의 힘든 사람들도 돌아보며 오만대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보인다. 반면 형편이 안 좋을 때엔 형편이 좋은 사람들을 헐뜯거나 비관하기보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힘차게 뛰어보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