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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재벌가에서 태어났다면?

by 최봉기

세상의 질서는 나와 같은 범상한 사람이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다. 어찌하여 태어나면서 누구는 금수저가 되고 누구는 흙수저가 되는가? 나는 부친이 藥士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흙수저 생활은 하지 않고 지내왔다. 1980년도 중반에 자비로 미국유학을 갈 정도였으니 金수저는 아니라도 銀수저 정도는 되지 않았나 싶다.


중 3이던 1978년에 가깝게 지낸 한 친구는 한마디로 금수저였다. 부친은 사업체를 운영하던 대표이셨고 집은 당시 부산에서 최고 부자들이 사는 대신동 동아대학교 부근 2층 양옥집이었다. 대문을 열면 정원에 잔디가 깔려있고 정원 주변은 나무들이 보기 좋게 심어져 있었고 작은 연못도 하나 있었다. 문을 나서서 몇 분만 걸어가면 수목이 빽빽이 들어선 대신공원이 있어 그 친구집에 놀러 갈 때면 마치 수목원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었다. 정문옆에는 당시 부의 상징이던 자가용을 주차시킨 차고가 있었고 기사도 따로 있었다. 집 말고 교외에 농장과 별장도 있어 방학 때엔 가족들이 며칠간 쉬고 오기도 했다. 부친은 당시 보통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해외여행을 종종 다녀오기도 했는데 여행기념품 중에는 나이아가라폭포의 그림이 있는 볼펜도 있었다. 한마디로 別天地였다.


내가 직접 경험한 금수저 말고도 국내외로 눈을 돌리면 어마어마한 부자가 있다. 국내에는 현대, 삼성家가 있고 미국에는 케네디家나 철강왕 카네기家, 오나시스家와 같은 부자가 있다. 내가 만약 국내에서 손에 꼽는 부자의 자식이라면 어땠을까? 어릴 때부터 먹는 것, 입는 것을 포함해 모든 게 주변 친구들과는 달랐을 것이고 어울리는 부류들도 소문난 집안의 자식들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일찍 미국 동부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했을 것이고 부유한 집안의 딸과 결혼도 했을 것이다.


대개 국내 재벌가 자식들의 성장과정이 그러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특권층 자녀들은 불명예스럽게도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름 아닌 '이혼'과 '마약'이다. 별 사랑도 없이 조건으로 인간끼리 혹은 가문끼리 인간거래를 했으니 결혼이 이혼으로 이어지기 쉽다. 또한 이미 만들어진 사업체를 맡으니 이름만 자기 회사이지 실제로는 남의 회사와 별반 차이가 없는 데다 후계자는 땀을 흘려보지 않았고 창업자에 비해 경험도 능력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결국 땀과 눈물이 없이 떠맡은 경영은 허무함을 낳고 허무는 또한 마약을 낳는지도 모른다.


인생을 예순까지 살아온 지금 시점에서 성장과정을 놓고 왈가불가하는 게 별 의미는 없다. 단지 부유한 삶을 사는 것 자체는 복 받은 일인지 모르지만 동시에 그리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돈도 고생을 해서 번 돈이 자기 돈이지 부모가 물려준 돈은 엄밀히 말하면 남의 돈이며 자칫하면 길에서 주운 돈이나 로또에 당첨된 돈처럼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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