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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영화배우가 되었다면?

by 최봉기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소설이나 실제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려면 우선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 그다음엔 감독이 출연할 배우를 섭외하여 연출, 카메라, 소품, 의상 등 담당 스탭과 함께 촬영에 들어간다. 배우들은 시나리오를 보고 전체 내용의 흐름과 함께 자신이 맡은 배역의 성격과 자신이 연기하는 내용을 심도 있게 이해한 다음 대사를 암기하고 맡은 배역에 자신을 몰입해 관중들이 마치 실제 상황을 보는 것처럼 실감 나게 연기해야 하는 것이다.


전체 스토리는 각각의 신(scene)으로 나뉘며 각 신별로 장소와 시간, 날씨가 달라지므로 세심한 준비가 요구된다. 70년대 불후의 명화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는 비 오는 날 밤 모자가 만나는 장면 몇 분을 찍기 위해 몇 시간씩 비를 맞으며 찍다 보니 아들 역을 맡았던 배우 김정훈은 감기가 걸려 고생을 했다고 한다.


스토리가 현재 시점이면 신경 쓸 게 적겠지만 과거일 경우 의상, 헤어스타일, 배경 세팅 등이 모두 달라진다. 사극의 경우 시대별로 의상과 배경 등에 대한 考證도 필요하다. 가령 담배가 한반도에 들어온 게 임진왜란 때인데 시기적으로 그 이전 시점을 다루는 작품에서 빨뿌리를 물고 있는 장면이 나오면 잘못된 것이다.


나는 어릴 때에 집 주변 영화관에서 2본 동시상영 영화를 총천연색으로 보았지만 한참 전에는 흑백영화시대였다고 한다. 어릴 때에는 영화를 봐도 주연배우 정도를 기억할 뿐 감독이 누구인지는 관심조차 없었는데 똑같은 스토리로 영화를 만들더라도 감독에 따라 영화의 느낌이나 수준 등이 조금씩 차이가 날 것 같다.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처음 무대에 올라갔을 때엔 왠지 생소하고 어색해 몸이 굳어버리기 십상이었다. 맡은 배역에 깊이 몰입해야 하건만 그것도 연기가 처음일 경우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경험이 쌓인다면 좀 나아질지는 모르지만 연기자는 무대에서 한마디로 미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바로 연기이다. 어찌 보면 무당이 주문을 외우며 魂靈을 자기 몸 안에 받아서 굿을 하는 것과 一脈相通할지 모른다. 무대 위에 서있는 사람은 자연인인 자신이 아닌 배역을 맡은 인물이고 자신은 그 分身이다. 게다가 연기자가 되려면 타고난 '끼'도 있어야 하고 얼굴도 좀 두꺼워야 한다.


만일 내가 영화배우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외모나 풍체는 문제가 안 되었겠지만(ㅋ..) 아마 연기력 때문에 꽤 고생을 했을 것 같다. 내가 배우를 했다면 처음엔 연기력이 뛰어난 연기자 누군가를 하나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 연기 흉내를 내었을 것 같다. 無에서 有를 창조하려면 뭔가 가교가 필요한 것이기에 그러하다. 그 후엔 나만의 색깔과 체취를 담는 노력을 하면서 연기를 완성해 나갔을 것이다.


나는 대학교 3학년초인 1984년 'Kismst'이란 영어연극에 주연배우로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겨울방학 때부터 몇 달간 그것도 영어로 연습을 하며 고생도 했고 뮤지컬이라 노래에 율동까지 익혀야 했다. 연극이 막을 내리자 체중이 3kg 정도는 빠지기도 했다. 직접 연기를 해 본 사람은 연극이나 영화를 수준 있게 감상할 공인자격 하나를 가지게 된다. 영화 화면에서는 직접 연기를 해보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배우들의 눈물과 스태프들의 땀과 좀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연출된 배우와 스태프의 몸부림도 보일 뿐 아니라 작품이 끝난 후 쫑파티에서 부딪히는 잔의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연기를 해봤던 경험은 삶에도 나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무대에서 고독하게 연기를 해 본 경험은 많은 청중들 앞에 서서 말을 할 때 담력과 여유를 갖게 하기도 한다. 인생 자체가 고독한 무대 위에서 혼자 표정을 지으며 손짓 몸짓까지 하며 정열을 발산하는 '모노드라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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