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는 점에서는 동물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동물과 확연히 다른 게 몇 가지 있다. 인간은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다. 옷과 신발은 몸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각종 무늬와 색깔을 입혀 멋과 개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옷과 신발 이외에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으로 언어와 음악을 들 수 있다. 동물도 자기네들만의 소리를 통해 의사소통도 한다지만 인간은 한 단계 진화된 말을 통해 복잡하고 미세한 감정까지 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문자를 통해 즉흥적인 말의 수명을 반영구적으로 보존시키기도 한다. 또한 언어는 의사소통을 하는 수단이지만 거기서만 머물지 않고 音과 결합하여 노래로 승화되기도 한다. 노래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과 비교하면 한 단계 진화된 감정표현 수단이 아닐 수 없다. 노래 속에 들어가 있는 감정은 일상적인 기쁨이나 슬픔과 달리 황홀한 경지의 기쁨까지 연출하며 인간의 깊은 애환이나 고뇌를 어루만지기도 한다.
나는 세상의 누구보다 노래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다. 20대 때는 하도 혼자 흥얼거리기를 좋아하다 보니 누군가가 지어준 별명이 '베짱이'였다. 어릴 땐 TV에서 흘러나오던 대중가수들의 노래를 좋아하였다. 그때 이제 고인이 된 당시 인기가수 김정호의 '하얀 나비'를 혼자 모창할 때 옆집 아저씨가 듣고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인 줄 알았다고 하며 한번 불러보라 한 적도 있었다. 그때엔 부끄러워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도 못했지만 노래는 남보다 잘한다는 말을 듣곤 했다.
그 후 대학 때 뮤지컬 'Kismet'에 주연배우로 출연하며 발성을 배울 기회가 있었고 가곡이나 세미클래식 노래를 접하면서 노래의 수준이 한 단계 발전하기도 했다. 우연히 사람들과 같이 술을 마시면서 흥에 겨워 불렀던 노래를 들은 여성들 중에는 마치 큰 감동을 느낀듯한 표정을 보인 경우도 있었다. 나로서는 은근히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이내 곤혹감이 찾아왔다. 나는 싱글이었지만 그녀들은 신혼인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만일 내가 가수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다른 직업들 다시 말해 사업가나 정치가 혹은 스포츠맨과 비교할 때 노래하는 가수라면 성공의 확률이 좀 더 높았거나 성공을 못했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노래 자체를 내가 워낙 좋아하기에 밤낮 가리지 않고 불러도 싫증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고 노래실력도 계속 발전하였을 것 같다.
노래에는 곡조와 가사가 있지만 뭐니 해도 그 속에는 감정이 들어가야 제맛이 난다. 감정이란 우리가 먹는 음식으로 본다면 發酵와 일맥상통하며 熟成된 깊은 맛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그 숙성된 음악은 지친 영혼에게는 안식을 줄 뿐 아니라 잠자는 영혼을 깨워 더없이 높은 곳으로 도약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