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만일 내가 야구감독이 되었다면?

by 최봉기

과거에 어느 야구해설위원이 TV 야구중계때 했던 얘기가 기억난다. "남자로 태어나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야구감독은 한번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최근 WBC (World Baseball Classic)가 진행 중인데 한국이 첫 번째, 두 번째 게임을 패하며 감독이 비난의 도마 위에 올랐다. 어느 유명 야구인은 공개적으로 "다음엔 절대 대표팀을 맡게 해서는 안된다"는 독설까지 내뱉기도 했다.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지만 더그아웃에서 게임을 조율하는 건 감독이고 승패까지 어찌 보면 감독의 책임이다. 가령 "나는 잘했는데 선수들이 잘 못 따라줘서 패배했다"라고 말하는 감독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감독이기 이전에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기던 경기를 역전당해 팀이 플레이오프전에서 탈락할 때 어느 감독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 했습니다. 모든 건 감독인 저의 책임입니다"였다.


과거 야구 명문이던 고교야구팀에서는 선수들이 잘못했을 때 한 번은 감독이 주장에게 몽둥이를 주고 자신은 '엎드려뻗쳐' 자세를 하고는 때리게 한 일이 있다. 선수들은 그 모습을 보며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리며 반성을 하고는 결국 시합에 나가 우승을 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어느 프로팀이 패배했을 때 감독이 술을 먹고 운동장에 들어와 선수들을 모아놓고 주장을 선수들 앞에 '엎드려뻗쳐' 시키고 몽둥이로 때린 적이 있었는데 선수들이 똘똘 뭉쳐 그 감독의 옷을 벗긴 일도 있다.


TV로 야구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선수들이 잘하면 게임에 이기고 잘못하면 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팀의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와 경기의 매 순간에 감독의 시선이 머물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야구감독의 스타일은 크게 '勇將', '知將', '德將'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감독이 야구를 뚝심으로, 머리로 혹은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리 부르는 수식어이다. 덕장이라 불리던 한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한 선수의 중요한 수비실수로 팀이 패배했지만 그 선수를 나무라거나 주전에서 빼지 않고 계속 다음 경기에 뛰게 했는데 그 선수는 다음 경기부터 펄펄 날며 결국 우승에 기여하며 감독에게 크게 보답하였다


이와 더불어 스타일을 '빅볼'과 '스몰볼'로 나누기도 한다. 전자는 장타나 홈런으로 점수를 내는 반면 후자는 번트나 단타로 점수를 내는 경우이다. 홈런만 친다고 경기를 꼭 이기는 건 아니지만 관중들은 대개 빅볼과 같은 호쾌한 야구를 좋아한다. 팀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관중이 원하는 야구를 펼치는 것 또한 감독의 역할이 되고 있다.


만일 내가 야구감독이 된다면 어땠을까? 나는 강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휘어잡고 말 한마디면 선수들이 죽는시늉까지 하게 하는 그런 스타일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말을 물가까지 이끌고 가는 것이 감독이라면 물을 먹고 안 먹고는 선수들이 선택할 일이다"라는 사고에 크게 공감한다. 이와 함께 야구선수 이전에 인간이 되라는 걸 강조했을 것 같다. 특히 재능과 능력이 좀 있다고 까부는 선수는 스스로 반성하게 하고 능력이 약간 부족하지만 묵묵히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에겐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할 것 같다.


야구는 주전과 벤치의 선수들 그리고 코치나 감독에 프런트까지 모두 한마음이 되어 치르는 전쟁이다.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에서 승리를 거둘 때에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른 군인들이 중심에 있었지만 행주치마로 돌을 날랐던 아녀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만일 내가 군인이 되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