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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요리사가 되었다면?

by 최봉기

전통사회에서는 사내애가 부엌을 얼쩡거리면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사내가 공부를 해서 벼슬을 하야지 집안이 번성한다는 이유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도 호텔의 일류 요리사나 제단사는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그 후이제는 남자와 여자의 영역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대학 때 객지인 서울에서 지내면서 혼자 먹을 걸 차려 먹어본 적이 없다. 월별로 하숙비를 내고 매번 차려준 밥을 먹으며 4년을 지냈다. 그 후 미국에 유학을 가서 처음으로 자취생활을 해보았다. 대학 때 하숙생활을 할 때는 매번 식사때마다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숙비는 매달 꼬박 내건만 반찬의 질은 어떨 때엔 오히려 갈수록 못해지는 것이었다. 차라리 내가 음식을 직접 해서 먹거나 사 먹거나 했으면 그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런 엄두가 나지 않았다.


후 자취를 할 때부터는 장을 봐와서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어두고는 시간 날 때마다 요리사 흉내를 내어보았다. 집에서 어머니가 요리하시던 걸 떠올려도 봤고 이런저런 재료를 바꿔가며 미각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도둑질도 하면 는다"라고 요리도 해버릇하니 솜씨도 늘고 성취감이나 도전정신도 생겼다.


한 번은 곱창을 사 와서 전골을 요리하는데 너무 질겼다. 그 후 곱창전골 메뉴가 있는 식당에 갔을 때 한번 슬쩍 물어보았다. "집에서 곱창으로 전골을 요리해 봤는데 너무 질겼네요"라고 하니 곱창은 우선 끓는 물에 한 시간은 올려놔야 연해진다고 했다. 그 말대로 다음에는 끓인 후 전골을 요리했는데 곱창의 쫀득한 맛이 없어져 제맛이 나지 않았다. 거기엔 아마 또 다른 노하우가 필요한 모양이다.


요리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음식을 직접 해 먹는 게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재료만 있으면 기본 정도의 음식은 직접 요리해서 먹을 수 있다.


만일 내가 요리사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꽤 유능하단 얘기를 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떤 요리라도 근본은 크게 차이가 없고 시작은 배우는 자세와 음식에 들어가는 정성이 아닐까 한다. 나의 경험으로는 음식은 우선 재료가 신선하고 질이 좋아야 맛이 난다. 피부가 안 좋은데 화장품으로 떡칠을 해봤자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또한 인공 감미료보다는 자연적인 게 깊은 맛을 낸다고 생각된다. 보다 정교한 요리의 기교는 하나씩 배워나가면 되리라 본다.


음식의 재료 중에서는 계절별로 제맛이 나는 것들이 있다. 무우는 겨울에 특히 수분이 많아 어떤 음식에 들어가도 제맛이 난다. 생선도 봄에는 도다리, 여름에는 민어, 가을에는 전어, 겨울에는 대방어 등 계절마다 특히 맛이 좋은 것들이 있다.


맛도 맛이지만 음식을 건강에 매치시켜 본다면 그 또한 음식의 가치를 한 단계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고혈압이나 당뇨가 있는 사람에게 마치 약과도 같은 음식이 존재한다. 한국사람은 약간 짜게 먹는 편인데 나트륨을 중화시키는 칼륨음식이 고혈압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다고 한다. 콩, 고구마, 감자, 토마토, 시금치, 당근, 양배추, 오렌지 등이 그러하다.


풍성한 음식이 차려진 식탁을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풍성해진다. 가을날 추수를 마치고 조상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차례를 지낸 후 온 가족이 한자리에 앉아 제사 음식을 나누며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은 찾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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