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억 속에서 사라진듯한 직업 중 하나인 '마도로스(matroos)'는 네덜란드어로 外港船 선원을 의미한다. 마도로스란 말은 넓게 펼쳐진 바다와 대형 선박 그리고 갈매기 소리가 어우러져 남성적이고도 무척 낭만적이란 느낌을 준다. 특히 부산에는 한때 선원가족들이 꽤 많았다. 선원들은 대개 상선을 타는 사람들이건만 처음 배를 탈 땐 魚船을 타기도 한다. 원양어선을 타고 스페인 부근 라스팔마스 등 멀고 먼 곳에 가서 몇 년을 보내기도 한다.
어린 시절 부친이 마도로스였던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주로 눈에 띄는 게 거실에 걸린 박제된 거북이나 모형군함이었다. 방에 들어가면 유리로 된 진열장에 양주가 形形色色 들어있기도 했다. 당시 부친이 갑종선박 선장이던 친구의 말이 교사들 월급이 10만 원일 때 자기 부친은 월급이 20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한 번씩 귀국해 가족의 품으로 올 때마다 멋진 선물을 가득 넣어 온다. 당시 국내에서는 구경하기 무척 힘든 니콘 카메라, 소니 워커맨, 믹스기, 라이터, 파커만년필, 샤넬 5 향수, 조니워커, 켄트 양담배, 커피, 초콜릿 등이었다. 부친으로부터 그러한 선물을 받은 친구들은 교실에 그것들을 가져와 여기저기 보여주며 뽐내기도 하였으며 우리들은 입을 쩍 벌리곤 했다.
부산이란 도시가 규모면에서 아직도 서울 다음인 국내 제2의 대도시이지만 내가 어릴 때엔 대도시로의 위용이 지금보다는 훨씬 대단하였다. 남포동과 광복동의 극장가에는 고급스러운 구둣방이나 양품점과 함께 유흥가들이 줄을 이었고 주변 갈빗집이나 일식집 등에는 돈깨나 있는 사람들로 붐볐는데 그중에는 마도로스들도 한몫했던 것 같다. 부산하면 늘 따라 나오는 말이 '기마이'였다. 일본말 기마이는 기분낼 때 통 크게 한턱 쓰는 걸 말한다. 그것도 주머니 사정이 좋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만일 내가 마도로스였다면 어땠을까?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茫茫大海를 항해하는 건 고적하고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까지 짐을 싣고 항해를 할 경우 한 달이 걸린다는데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다 보면 무척 육지가 그리워지리라 생각된다. 배의 대통령인 선장은 혹 배에서 폭동이 일어날 경우 銃으로 진압을 할 수도 있다. 오랫동안 부친이 선장생활을 했다는 친구 하나는 배에서 자신의 부친 머리옆으로 도끼가 몇 번 날아갔다고도 한다. 지금은 CCTV라도 있지만 배에서 마음 잘못 먹고 누군가를 바닷속에 던져 버리면 흔적도 없이 사람 하나 사라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오래 배를 탄 사람들은 갑판 위에 있을 때 마음이 가장 편하다고 한다. 매일 바다 한가운데에서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日出과 日沒의 장엄한 광경도 보면 멋진 생각들이 분수처럼 솟아오를 것 같다. 또한 바다의 맑은 공기를 마실 때에는 오염된 도심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청정함을 만끽하며 간혹 無我 지경에라도 도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