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Myers- Briggs Type Insicaters)성격 유형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나의 성격은 자신의 주장이 강하여(Dominant)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남들을 이끄는 리더보다 상황을 용이하도록 도움을 주는(Facilitaing) 유형으로 나왔다. 그런 유형의 직업 중 '상담사(counseller)'가 눈에 들어왔다.
相談이란 건 상대와 대화를 통해 협의를 하거나 목적하는 바를 실행하는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서라도 감정을 최대한 누그러뜨리고 담담하게 하는 말은 감정을 섞어 과격하게 하는 말보다 실제 호소력이 훨씬 크다. 금연을 한 지 30년이 넘는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 사회생활에서 담배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상대방이 뭘 잘못해 화가 나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상대방에게 불도 붙여주고 함께 흡연이라도 하면서 얘길 하면 입에서 쇳소리가 적게 나올지 모른다. 감정이 격해질 때에는 차라도 한잔 마시며 얘기하는 것도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으리라 보인다. 감정이 앞서면 대화는 진행이 되지 않고 산통이 깨어질 수 있다.
인간은 평소에는 바쁘고 해서 속마음을 내어 보이기보다는 타성에 젖어 형식적이 되기 쉽다. 인간이 가장 진솔해질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 보면 아마도 삶을 마감할 때가 아닐까 싶다. 아쉬움이야 있겠지만 떠나는 마당에 감추거나 흥분할 일이 뭐 그리 많겠는가? 박정희를 시해했던 김재규가 법정에서 했던 육성 녹음을 들은 적이 있다. "저의 부하들에게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군인의 신분으로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입니다." 였는데 담담함과 진솔함을 느낄 수 있다.
만일 내가 카운슬러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하나같이 불만에 차있거나 삶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을 위로해 주거나 의욕을 북돋아줘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인데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보람은 있을 것 같다. 사업 실패, 失戀이나 이혼에 시험 낙방 혹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거나 한 사람은 좌절감이나 자책감에 시달리는데 그러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카운슬러가 할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무엇보다 다시 일어서도록 사기를 북돋아 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세상에는 더 어려운 처지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필요도 있을 것이다.
남에게 조언을 해주는 입장에서는 책 등 간접 경험도 중요하지만 직접 경험한 내용이 대개 훨씬 설득력이 있다. 딴 사람 얘기할 것도 없이 20대 때 나 자신이 인생의 최저점까지 추락한 경험을 들려준다면 듣는 이들이 새로운 희망을 갖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 진로를 놓고 고민을 하던 중 군복무를 연기했고 대학원에서 전공이던 영어영문학 대신 경영학을 전공하려고 부전공 경영학 과목을 수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미국에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시행착오도 있었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어려움을 겪었다.
공부가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고 덩달아 군복무, 연애 문제까지 풀리지 않게 되자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학교를 옮겨 공부를 마치느라 군복무도 덩달아 늦어지게 되었다. 편지로 교제를 하던 여자는 어느 순간 전화번호를 바꿔버리기도 했다. 그 후 군을 마치고 나이 서른에 취업을 했다. 일찍 정상적으로 취업을 했던 친구들은 직함이 대리였지만 나는 그들보다 한참 아래였기에 상대적 박탈감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은 과거지사라 담담하게 또한 웃으면서 얘길 하지만 당시에는 荊棘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학교를 옮겨 공부를 새로 하려 할 때 엄습하던 자책감과 불안감은 끊은 담배를 다시 사서 입에 물게 하였고 재떨이에는 꽁초가 계속 쌓이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룸메이트 독일 친구는 무슨 말 못 할 고민이라도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담담하게 공부가 애초의 계획보다 늦어져서 그랬다고 하자 현재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잘 될 거란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그때 마음 잘 못 먹었다면 아까운 나이에 삶과 이별했는지도 모른다.
깊은 수렁에 빠져 있을 때엔 다른 이들의 충고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늪에서 헤어 나오는 건 자기 자신 밖에 없다. 상황이 어려워질 땐 희망이 보이지도 않고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한다. 그러면서 꽁꽁 얼은 시냇물도 봄기운 속에서 슬슬 녹기 시작하면서 결국 봄이 오는 것이다.
이상의 내가 직접 경험한 인생스토리는 그다지 자랑스러운 건 아니지만 생생한 체험담이란 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경우 한동안 캄캄한 동굴 속에 갇히게 된다. 뭔가 숨통이 트일 때까지는 돌파구를 찾지만 벗어나기가 쉽지만은 않다. 현재 갑갑한 미로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밝은 햇살이 비취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