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만화가가 되었다면?

by 최봉기

나는 70년대였던 어린 시절 만화방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니었는데 만일 그랬다면 지금보다 상상력이 좀 더 풍부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 시절에는 학교나 집에서 늘 강조했던 게 공부였고 반에서 1등을 하면 VIP 대접을 받았지만 만화만 좋아했다면 문제아 취급을 당하거나 어른들로부터 "인간 좀 돼라!" 는 말을 듣기도 했다.


공부를 잘했던 친구 중에 만화를 기분전환용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S대 공대를 나와 현재 국내 최고 대기업 대표로 있는 한 친구는 시험전날 만화방에 들러 만화 몇 권을 깔끔하게 독파한 후 시험공부에 돌입하기도 했다.


그 시절 초등학생들이 좋아했던 어린이 잡지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 소년', '소년생활' 등에 부록으로 연재되던 '도전자 하리케인', '바벨 2세', '대야망', '꺼벙이'와 같은 만화는 꽤 인기를 끌었다.


80년대가 되어 사회분위기가 바뀌고 생활수준도 향상되며 만화라는 장르가 마치 소설처럼 부상했는데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때 아닌 만화붐이 일기도 했다. 나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1982년)과 박봉성의 '신의 아들' (1984년), '아버지와 아들' (1985년) 등의 만화들을 대학 졸업하던 해인 1986년에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만화를 보면서 나 자신이 영화관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들 만화중 일부는 애독자가 늘면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만화는 소설보다 공상적인 요소가 더 많고 파격적이기에 보는 이들에게 더 큰 흥미와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만일 내가 만화가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우선 소재거리가 될만한 인물이나 이벤트를 발굴하거나 상상 속에서 그려낸 다음 극적인 요소를 가미해 작품을 완성해 나갔을 것이다.


만화에서 흥미를 끌고 대반전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느끼게 했던 주인공은 주로 야구선수, 복서, 사업가였다. 만화 '아버지와 아들'에서는 방탕한 삶을 살던 재벌 2세가 改過遷善하여 올바른 인간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부친인 회장이 몰락하여 서민으로 추락하는데 자식도 부친과 더불어 서민의 삶을 살며 인생을 배워 진정한 사업가로 다시 태어나는 스토리인데 모든 것이 회장인 부친의 각본이었던 것이다.


비록 공상적인 내용이지만 마약과 이혼 등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으로 간혹 지탄을 받는 현재의 재벌가 2세와는 달리 신선하고 감동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과거에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고 일단 성공을 한 경우 그걸로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 성공에서부터 새로운 드라마를 제작해야 하는 때이다.


다시 말해 배를 굶지 않고 여유로워졌다면 잉여자금으로 이젠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때인 것이다. 또한 판검사나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등 통념화된 출세의 유형 외에도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성공모델이 나와야 하건만 아직은 요원하기만 하다. 새로운 동기와 가치를 찾지 못한다면 마약이나 쾌락 혹은 혹은 도박에 빠질 위험도 있다.


만화가로서 성공한 '박봉성'과 '이현세'는 이러한 성공 모델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 모두 SKY대학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고졸들이다. 부산이 고향인 고인 박봉성은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에서 걸어서 갈 정도의 거리인 '건국상고'를 나온 인물이었다. 당시 그 학교는 학교 취급도 하지 않았던 곳이었건만 그런 흙속의 진주가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나의 눈을 의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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