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해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남녀, 즉 독신자의 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남자의 경우 여건만 된다면 혼자 살다 언제든 결혼을 할 수 있지만 여자는 혼기가 지나면 결혼을 단념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한다. 과연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지는 게 나은 건지 그냥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게 나은 건지 단정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결혼을 해보고 후회라도 할 수 있다면 결혼을 해보지도 않은 것보다는 낫지 않나 싶은 게 결혼을 해 본 나의 입장이다.
독신자라면 우선 떠오르는 사람들이 종교인들로서 천주교의 사제와 수녀 그리고 스님인데 일반인들 중에 사회적인 명망이 있는 독신자들이 더러 있기도 하다. 고인이 된 김동길교수와 김옥길총장 남매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독신들이 말하는 독신의 이유는 뭐니 해도 가정이란 구속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가정이 주는 '포근함 내지 안락함'과 '자유의 구속'이란 양면적 특성 중에서 전자는 포기하더라도 얽매임으로부터의 해방이란 후자를 택하는 합리적인 대안이 '독신주의'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독신으로 사는 또 다른 이유로 혹자는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을 간직하거나 아니면 인간적인 순수함을 끝까지 지켜나가기 위함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흔한 경우는 아니겠지만 티 없이 맑은 순수함을 추구한다면 결혼이란 大事가 비순수한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한 이성을 만나 간절하게 사랑하는 단계까지는 모르지만 가정을 이루고 살 때부터는 다양한 현실적인 요구 속에서 인간 본연의 순수함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가정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현실과 타협하며 세상의 때가 묻기도 하며 남녀관계에서 수정처럼 순수했던 사랑의 마음도 세상먼지 속에서 뿌예지는 것이다.
만일 내가 독신이었다면 어땠을까? 자녀들 교육비나 생활비 부담이 적어 금전적인 압박은 적을지 모른다. 하지만 노총각시절 생활을 떠올려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을 것이다. 가정이 있는 친구들은 가족들과 함께 지내느라 나를 따로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고 만나면 공통 화제도 적어짐에 따라 만남 자체의 의미도 적어져 아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을 것이다.
반면 독신의 눈으로 세상 먼지 속에서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사는 주변의 기혼자들을 바라보며 비록 고독하지만 아직 청정하고 오염되지 않은 자태로 등대지기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라도 하며 지냈을 것이다. 또한 이따금씩 찾아오는 쓸쓸함과 싸우며 글을 쓰기도 하고 악기나 노래 혹은 스포츠 등과도 가까워졌을 것이다. 이따금씩은 혼자 배낭을 메고 멀리 여행을 떠나기도 했을 것인데 도중에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드물게나마 세상의 공해에 오염되지 않은 이성도 있을지 모른다.
20대 때 만난 한 여자는 독신으로 살고 싶다고 말하며 "독신은 아름다워 보인다"라고 했다. 환갑이 된 나이에 그 말을 떠올리니 괜히 失笑가 나온다. 그 이유가 나 자신이 아름다움을 논할 만큼 고고하게 살지 않기에 그런 건 아닌지 반문도 해본다. 독신이 진정 아름답다면 갈수록 인간의 순수함이 빛바래가는 세상 속에서 가정이란 현실적인 덫에 갇혀 沒個性化된 삶을 살지 않고 스스로 개성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 정도라야 가능할지 모른다.
그럴 정도가 아니라면 삶이란 고독한 항해에서 홀홀단신이기보다 가족과 함께 喜怒哀樂을 나누며 사는 게 나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