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체력도 파워도 강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초등학교를 한 살 일찍 들어가 1년 위들과 다니다 보니 늘 기싸움에서 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렇다 할 武勇談이 없다. 건달이 삥 뜯느라 겁줄 때도 당하기만 했고 어디 한번 맞짱을 뜰 정도의 패기도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 때부터는 남들 앞에서 한 번씩은 사나이 연기를 해보기도 했고 매일 조깅을 하며 체력을 키우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체육선생님은 "남자는 떠바리가 있어야 말을 한마디 해도 먹어준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일단 덩치가 있으면 상대가 쉽게 싸움을 걸지 않는 법이다. 건달들은 건달끼리 싸운다. 반면 양아치들은 만만해 보이는 선량한 사람들 앞에서 설치다 자기보다 센 사람이 나타나면 "형님!" 하고 고개를 숙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악당 몇을 주먹으로 박살 내는 모습은 언제나 통쾌감과 대리만족을 가져다준다.
고교시절에 공부도 하면서 의협심도 있고 주먹도 쓸 줄 아는 꽤 멋있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그런 스타일의 한 친구가 어느 학교에서 소위 '짱'이란 친구에게 도전장을 던졌는데 짱이 부하 몇을 시켜 그를 혼내줬다. 그 후 곧바로 보복전이 벌어졌다. 종례가 끝나고 담임이 나가자 당했던 친구를 도우러 멀리서 걸음을 한 친구 몇몇이 각목을 들고 교실에 난입해 짱의 무리들과 난장판을 벌였다. 그 일로 인해 도전장을 던졌던 친구는 퇴학처분을 받았다.
그 후 그는 검정고시를 거쳐 S대에 입학했는데 기대했던 대학에 실망감을 가졌는지 졸업은 하지 않고 부산의 항만노조에서 야학 등 노동 관련 운동을 했고 국회의원을 지낸 노동계 거물의 오른팔로 지냈다. 그는 정치인들조차 "선생님!" 하고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정도의 인물로 살고 있다.
만일 내가 주먹이 셌다면 어땠을까? 말 한마디를 해도 일단 먹어주니 좀 더 당당했을 것이고 누가 시비를 건다면 일전을 불사할 정도로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남성적인 매력을 좋아하는 미인들과 어울릴 기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기질로 볼 때 남 아래서 고분고분하게 살기보다는 개인사업이라도 하며 보스기질과 카리스마를 가진 사업가로 살았을 것이다. 건설업과 같은 경우는 그런 남성적인 기질과도 잘 어울리는 분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의 주먹'이라는 '김두한'처럼 주먹계를 장악한 후 국회의원에 출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만일 국회의원에 당선된다면 국회에서 국민들이나 팔아먹고 헛소리하며 이권다툼이나 하는 저질 인간들을 혼내주는 일도 했을 법하다.
1966년 30만 부 이상의 경의적인 음반판매를 기록하며 최고가수 반열에 올랐던 가요 '갈대의 순정'의 주인공 박일남은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주먹으로 통한다. 그는 인기와는 달리 한 번도 10대 가수상을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연말만 되면 사고를 치고 경찰서에 연행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때는 가수들을 무시하던 TV의 PD를 구타해 방송 출연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남자에게 있어 주먹이란 건 어찌 보면 자신감을 갖게 하는 멋진 연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인간을 비정상적인 삶으로 이끄는 '毒'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어린 시절 남 앞에서 어깨에 힘주고 큰 소리 제대로 쳐보지 못한 사람에게 주먹이란 건 '알라딘의 마술램프'와 같이 신비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