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과 같이 수명이 여든까지 길어지고 앞으로 백세까지 늘어날지 모르는 세상에서 남들보다 일찍 삶을 정리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옛말에 "美人은 薄命"이란 말도 있고 비범한 인물들 중에는 특히 수명이 짧은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을 아쉽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어차피 한번 살다 가는 세상인데 길건 짧건 큰 차이는 없다고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오랫동안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나는 아직 부모님이 세상에 계시지만 16년 전 장모께서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나시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 처갓집식구들이 병실을 지킬 때 나는 오후경 애들은 집에 있게 하려고 차로 병원문을 나설 때 영면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진 못했지만 고인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고 한다. 이제 환갑을 앞둔 내가 언제 눈을 감을지 모르지만 마지막 순간 웃을 수 있길 바란다.
1988년 38세의 나이로 어린 자녀들을 남기고 요절한 가수 '최병걸'의 장례식장을 찾았던 '이주일'은 "연예인들이 연예활동을 하는 것도 생활을 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라고 울부짖었다. 홀로 된 미모의 젊은 배우자와 서너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여자애의 모습이 화면에 나올 때엔 나의 마음도 무척 아팠다. 아마 고인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키 위해 밤무대에서 일을 하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나의 부친은 어려서 모친을 여의고 새엄마가 들어와 이복동생들과 함께 생활하셨다. 그 후 줄곳 정신적으로 방황을 하다 10대 후반에 자구지책으로 군입대를 하였다. 그 후 6개월 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생모인 친할머니가 요절했을 때 어린 나이의 부친이 가진 정신적인 충격은 경험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귀가할 때 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으면 마음 한 구석이 무척 허전하곤 하였다. 매일 그런 삶이 이어졌다고 하니 하늘이 무너짐을 느낀다.
만일 내가 요절했다면 어땠을까? 결혼 전이었다면 결혼도 못해 보고 세상과 이별한다는 생각에 아쉬웠겠고 결혼 후 자녀들이 어릴 때 그랬다면 자녀들이 커기도 전에 눈을 감는 그 비통함 또한 컸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면 夭折이란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 간혹 "내가 지금 세상을 하직한다면?" 하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육십까지 산 경우라면 삶에 대한 큰 아쉬움은 없지 않나 싶다. 자녀들도 성인이 되었고 나 자신이 노후를 위해 준비해 놓은 자금으로 가족들도 곤궁하게 지내진 않으리라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는 멋진 경치를 보거나 할 때 이제 죽어도 별 여한은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7년 전 부모님과 형제들이 함께 백두산 천지에 가서 운무 속에서 용이 한 마리 올라올듯한 장엄한 경치를 대할 때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간은 살면서 시기별로 온갖 경험을 하다 결국 눈을 감게 되지만 거꾸로 필름을 돌려보면 숨을 거두는 때까지 한발 두발 부지런히 다가가는 게 인간이란 생각도 든다. 부디 세상을 떠날 때 지나온 삶에 큰 미련이 있어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는 불행은 없길 빌 따름이다.
인간은 세상을 떠날 때 유언을 남긴다. 자신이 살며 느꼈던 것들을 축약한 말이 그것이다. 하지만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거나 혹은 의식이 불분명한 채 병상에 누워 있을 경우를 생각해 보면 건강할 때 살며 경험했던 것들을 미리 부지런히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러한 내용을 담은 405편의 기록을 탈고하였다. 이젠 세상의 종말이 올 때 사과나무를 심을 마음의 준비를 하며 지내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