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 때 '인간'과 '삶의 종말'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의 고민을 하곤 했다. 누구나 태어나 유한한 기간 동안 목표를 세워 열심히 살지만 종말시점이 되면 가진 모든 걸 고스란히 놓아두고 떠난다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한 가지 다행한 것은 종말의 시간은 각기 다르지만 종말의 존재는 빈부 혹은 신분이나 계층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존재하며 누구나 이를 염두에 두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가올 종말시점에 삶을 아름답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이별연습을 미리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게 바람직할지 모른다. 살면서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이라면 두고 가야 하니 자녀 등 누군가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고 그중 절반 가량은 상속세로 없어진다. 따라서 번 돈은 곳간에 깊숙이 감추기보다 그때그때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해 버리는 게 나을지 모른다. 재능이나 지식 등 돈 이외의 것들이라면 전수나 가르침의 대상이므로 기록으로라도 남겨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시한부 생명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가진 것들을 누군가에게 물려줄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대상은 주로 가족이 되겠지만 꼭 돈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가족보다 우선할 수도 있으리라 보인다.
유한양행의 창립자 '유일한' 회장은 일생을 통해 이룬 부와 회사의 주식을 자녀에게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이룩한 부가 자신의 것이지 거저 물려받는 건 자식에게 오히려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소유한 것들을 나눠줬다면 그다음은 글을 통해 삶의 마지막을 정리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살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한 글과 삶을 마무리하는 글은 그 성격이 다를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밖에 못 살았지만 그대들은 좀 더 멋있고 좀 더 우아하고 좀 더 후회 없도록 살아주시오"라는 메시지라면 유족이나 주변의 친지 혹은 후손에게 주는 의미가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열심히 생활하면서 종말의 순간에 이르지만 사는 과정 동안 한 번씩은 예외 없이 닥칠 시한부 상황을 떠올릴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유한하기만 한 게 인간의 삶이라 사는 과정 자체가 허무해 보일 수도 있지만 종말이란 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존재하기에 사는 과정 자체가 그만큼 유의미하다는 역설도 가능하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