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몸이 건강할 때에 감사한 마음을 갖기보다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이며 생명은 곧 건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건강을 당연시할 경우 돈과 명예 다음으로 밀려나는 게 건강이다. 그러다 건강에 경보등이 켜질 때에야 건강이 돈보다 소중한 것임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된다.
나는 지금껏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이 거의 없다. 선천적으로 체력이 아주 좋진 않지만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잘 챙겨 먹는 편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 주변에는 중학교 때 몸에 이상이 와서 휴학을 하고 몇 년을 병원에서 보낸 친구가 있다. 그는 건강을 회복한 후 복학해 두 살 아래 동생벌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처음 그가 신장염으로 입원했을 때엔 친구들이 종종 병문안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조금씩 관심에서 멀어졌으며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건강상의 문제로 혼자가 된 10대 중반에 또래들이 대학입시의 공포 속에서 지낼 때 독서와 사색을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였다. 그는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현재 교수로 지내고 있다.
만일 내가 병자였다면 어땠을까? 남들이 현실 속에서 부대낄 때 질병과 싸우며 병실에서 사색의 시간을 보내었을 것이다. 思索은 편안히 앉아 생각하며 쉬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의 과정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대개 진로나 결혼 등을 놓고 고민을 하지만 이보다 우선적으로 또한 심각하게 해야 하는 고민은 삶 자체에 대한 고민이다. "왜 사는가?" 혹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어릴 때는 사실 정신적으로 고민할 일이 별로 없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는 남들 따라 살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게 인생이란 걸 깨닫게 된다. 인간과 사회와 인생에 관한 제반 문제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듣고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자신만의 '인생철학'이다.
삶에 대한 고민은 '왜 살며 어떻게 사는가'로 요약될 수 있다. 사는 목적이 '오로지 성공'이라고 한다면 사는 방법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게 될 수 있다. 반면 사는 목적이 '인간적으로 사는 것'이라면 사는 방법도 '비인간적인 것과는 타협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어진다.
자기 수양을 통한 정신적 성숙함이 없다면 '능력'과 '독선' 그리고 '합리화'가 삶의 좌표가 되어버릴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쥐어진 권력의 칼을 휘두르다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했던 자들이 '히틀러', '이토오 히로부미'나 '이완용'과 같은 인물이다. 이들을 두고 무능력자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지 모른다. 다만 출중한 능력을 좋지 못한 방향으로 사용한 것이며 그로 인해 결국 자기는 물론 세상을 파멸로 이끌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한마디로 올바른 인생철학의 부재 때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왜 살며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사람마다 약간 차이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다 훌륭한 해답은 날이 쨍쨍하고 하는 일이 잘 될 때라기보다 궂은날, 병실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