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간과 돈만 있으면 세계 어디든 손쉽게 여행을 갈 수 있지만 내가 어린 시절 일반인들에게 해외여행이란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지도 않는데 국내 여행도 아니고 해외를 사업상 출장도 아닌 여행한다는 건 당시 특권층에서나 있음 직한 일이었다. 생활에 여유가 없던 서민들은 미국에 이민이라도 가서 살고자 했지만 전쟁위험 때문에 너나 나나 이민 갈 생각을 했기에 이민 또한 아무나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김찬삼이란 한 여행가가 1950년 말에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를 여행하며 보고 경험했던 내용을 신문에 연재했고 1962년에는 그 내용이 책으로 나왔다. 당시 일반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으며 책의 가격도 대졸 신입사원 초임에 가까울 정도로 비쌌지만 100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책의 내용이 직접 체험한 사실들이라 실감 나고 생동감도 있었겠지만 당시 세계일주라는 건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따분한 삶을 살던 일반 사람들에게는 어찌 보면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대개 여행이란 건 시간과 금전적인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지만 '김찬삼'은 지리를 전공한 후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교수를 했던 사람이라 세계 곳곳을 직접 탐험하고자 하는 열정이 남달랐으리라 보인다. 그는 화물선에 몸을 싣고 태평양을 건너기도 하였고 오토바이를 타고 북미와 아프리카를 종횡하였다. 잘 곳이 없어 현지의 경찰서에 가서 유치장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아프리카에서는 맹수를 만나기도 했다. 그는 여행 도중 알베르트 슈바이처박사를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
만일 내가 여행가였다면 어땠을까? 아프리카나 남미 혹은 아시아의 오지에 갈 경우에는 풍토병이나 절도 혹은 강도나 살인을 당할 위험도 있다. 심하게 말하면 목숨 내어놓고 하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나라들보다는 문명의 혜택이 미치지 못한 곳에 가서 원주민들의 낙후되었지만 자연 속에 묻혀사는 모습을 직접 체험한다면 익히 느껴보지 못한 삶의 영감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그들은 최소한 도심지에서 편리하게 사는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인간 본연의 순수함과 인간미를 가지고 살 것이다.
우리는 의식주의 안정을 바탕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추구했던 인물이 있다. 의사면허 하나면 평생 걱정 없이 배불리 살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슈바이처박사와 이태석신부는 생고생을 사서 하였다.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일이며 또한 남들이 비웃을지 모르는 일에 그들은 오히려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잊혀버리는 일반인들과 달리 사망 후에도 오랫동안 전 세계인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일들 중에서는 어찌 보면 최면이 걸렸거나 혹은 세뇌가 되어 그리된 경우는 없는지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돈이 되는 일은 그 영향이 부정적일지라도 합리화되거나 정당화되기 십상이다. 첨단무기 개발이야말로 단적인 예이다. 세상은 심하게 말하면 악의 세력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오지의 여행체험을 한다면 이러한 잘못된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속깊이 느낄 기회가 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