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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천재였다면?

by 최봉기

흔히들 '잘 되면 제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란 말을 한다. 어디까지가 자신이 노력한 결과이고 어디까지가 거저먹는 것인지의 판단도 어떨 땐 어렵다. 그렇지만 놀지 않고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썩 좋지 않을 경우라면 미안하지만 자신보다 조상에게 책임을 돌려야 할지 모른다. 한편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결과는 의외로 좋을 경우라면 이는 조상 덕이라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반대인 경우이다. 열심히 하지 않아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을 자기 탓 대신 조상 탓으로 돌리고 열심히 하지 않고도 결과가 좋은 것을 조상 탓이 아닌 자기가 잘 나서 그런 거라고 우기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천재란 소리를 듣는 인물들이 여기저기 있다. 서양에서는 음악가 '모차르트', 예술가에 발명가이자 건축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 등이 그러하고 중국에는 조조와 제갈량 등이, 조선에는 율곡 이이와 정약용 등이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인물들은 나와 같은 둔재가 보기엔 선천적으로 놀라운 재능을 가진 인물들로 보인다. 하지만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그 재능 위에서 남다른 동기로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으리라 보인다. 간혹 게으른 천재들이 있다. 머리는 좋은데 머리만 믿는 건지 빈둥빈둥 놀며 지내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형은 그 재능을 어디에 사용할지 동기를 찾지 못해 그럴 수도 있다.


만일 내가 천재라면 어떤 식으로 살아갔을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누구나 남들보다 잘하는 게 하나쯤은 있다. 나에게 그런 게 있다면 부친을 닮아 오래전 일을 생생하게 잘 기억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기억력을 이용해 과거를 떠올리며 글을 써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두뇌가 탁월하게 좋았다면 뭔가 대단한 목표를 세워 도전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중에서 가능한 하나의 대안이라면 학자일지 모른다. 그것도 한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고 여러 분야를 아울러 제법 거창한 논문이나 책 등의 작품을 내놓지 않았을까 싶다.


인문 사회 분야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와 철학을 아우른다. 문학이나 역사의 경우 이러한 요소들의 총집합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인 인물들 중에는 한 분야가 아닌 여러 분야를 섭렵한 경우가 더러 있다. 칼막스의 경우 역사, 철학, 사회, 정치와 경제를 아울러 막시즘을 창시하였다. 또한 버트란드 러셀의 경우 철학자, 수학자이고 교육자이며 문필가이기도 한데 수학자라 그런지 글이 논리적이고 내용의 구성이 매우 조직적이며 질서 정연하다. 그뿐 아니라 글을 전개해 가는 방식도 그만의 독특한 냉소와 풍자를 담은 유머를 활용해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창성을 보인다.


또 하나의 대안이라면 정치, 경제, 문화, 사회를 아우르며 역사적인 스토리로 대하소설을 쓰는 작가일지 모른다. 박경리(1926~2008년)의 '토지'란 소설은 1897년 경술국치부터 1945년 해방까지 약 50년간 하동, 진주, 지리산과 만주를 배경으로 일제 침탈, 왕권 붕괴, 양반계급 몰락, 농민 수탈 등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한 양반가의 몰락과 재기를 통해 보여준다. 소설 토지는 등장인물만 해도 500여 명에 이르며 작가가 43세이던 1969년부터 26년간 집필한 작품이다. 토지는 문학작품으로서도 대단하지만 20세기초 만주지역의 생활상을 살피는 역사적인 자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소설 토지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이렇듯 재능이 있는 사람은 하고자 하는 일에 남다른 동기를 부여받을 경우 무서운 힘을 쏟아내며 많은 이들의 공감과 경이감을 자아낸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20세기와 비교해 세상은 몇몇 사람들이 독점하는 자본과 영향력에 예속되는 듯하다. 또한 저마다 꼭꼭 문을 걸어 잠그고 살며 내 것만 챙길 뿐 뭔가 신선하고 획기적인 변화의 신호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갑갑한 현실에서 지쳐가는 인간을 飛上하게 할 제트엔진이 절실하기에 이를 가능케 할 재능 있는 이들의 등장과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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