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나서 예순을 앞둔 지금까지 어디 끌려가서 고문이란 걸 당해본 적은 없지만 고문과 유사한 것을 경험한 적은 있다. 중3 때 한 살 위 건달 같은 놈한테 걸려서 구타를 당해본 게 그것이다. 나만 보면 돈을 뜯어내려고 하길래 먼 걸음치에서 피했더니 자기를 무시한다면서 물리적 폭력으로 앙갚음을 해왔다.
세상에서 부당하게 누군가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고 그것도 모자라 폭행을 당하는 것만큼 더러운 일은 없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늘 자행된 때가 있다.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 때였고 전자는 '독립' 후자는 '자유'나 '민주'란 말을 하다 순사나 경찰에게 걸릴 경우 그리 되었다.
영화 '남영동 1985'에서는 고인이 된 김근태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근안 등 5명의 고문 경관들에게 22일간 잠 안 재우기, 날개꺾기,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당했던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그 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파킨슨병'과 '뇌정맥혈전증'으로 건강에 큰 손상을 입었다. 고문의 좋지 않은 기억은 그 후 치과에 가서 드릴 소리만 들어도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며 뛰쳐나갔고 수술대에 눕는 것도 고문할 때 사람을 묶어 놓던 '칠성판'이 떠올라 괴로워했다고 한다.
만일 내가 의로운 일에 앞장서다 고문을 당했다면 어땠을까? 암만 의롭고 강직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졌다 해도 고문을 끝까지 이겨내고 미소를 지을 사람은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십자가에서 사지가 찢기는 고통을 당한 후 숨졌던 예수님도 최후의 순간에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라고 체념하듯 중얼거렸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크 15.34)이다.
고문의 종류는 다양한데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도 있다. 김구의 '白凡逸志'를 보면 김구가 일본경찰에게 잡혀가 며칠간 잠을 못 자는 고문을 당한다. "일본 경찰은 자신의 나라를 위해 잠도 자지 않고 나를 감시하는데 나 자신은 진정 나라를 위해 한 게 뭐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김구가 천정에 몸을 묶어 매다는 통닭구이 고문까지 참아내자 일본 경찰은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담배를 주며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고문을 하는 건 고통이나 공포감을 통해 뭔가를 얻어내려는 것이지 괴롭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는 모양이 다. 고문 참는 걸로보면 김구가 김근태보다는 한수 위였는지 모른다.
경찰서에서 했던 고문 중에는 '성고문'이란 이란 것도 있었다. 1986년 서울대 의류학과의 귄인숙은 재적 후 위장취업으로 조사를 받다 부천경찰서에서 2차례에 걸쳐 문귀동 경장으로부터 성고문을 당하였다. 그 후 고소하여 가해자에 징역 5년, 자격정지 3년의 형이 내려졌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성고문은 빨치산 여성에 대해서도 행해진 걸로 나온다. 여성을 벗겨놓고 알몸인 채로 심문을 한다든지 가슴이나 복부를 중심으로 고문하며 여성들을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고문을 당해 본 사람은 고문을 당할 때의 일차적인 고통과 함께 그 후 시간이 흐르면 과거 고문의 잔상으로 인해 이차적인 고통까지 당한다. 악몽을 꾸기도 했을 것이며 지하 혹은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곳에 들어가면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한 현역 의원은 5공 출범 때 내란음모자로 잡혀가 고문을 당했는데 당시 고문의 총책임자 전두환을 떠올릴 때마다 너무 괴로워 그 인간을 용서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결국 용서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고문 피해자 뒤에는 고문을 전문으로 하는 경찰이 있다. 흔히 말하는 '고문기술자'인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 '이근안'이다. 그는 고문을 통해 계속 특진으로 고속승진했고 재직기간 총 16번의 표창을 받았다. 그는 김근태를 고문한 걸로 수배령이 내려진 후 자수하여 대법원에서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의 판결을 받고는 형기를 채우고 출옥해 목사가 되기도 했지만 목사직을 박탈당했다. 고문을 했던 자는 인간적으로 용서의 여지가 없지만 어찌 보면 이들은 하수인에 불과하다. 그들 뒤에서 그들을 조정하는 경찰간부란 인간들이 더 악질이 아니겠는가?
고문으로 한평생을 먹고살았다는 인간이 한 번은 직접 고문을 당했던 사람 앞에 나타나 울며 용서해 달라고 했다는데 너무 가식적으로 보여 용서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사람에게도 "죄는 미워해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라고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