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9년 TV에서 절찬리에 방영된 드라마가 '수사반장'이다. 당시는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 시절이어서 인지 좀도둑, 소매치기, 공갈 협박, 폭행, 유괴, 토막살인, 부녀자 희롱 등 다양한 범죄가 연일 발생하곤 했다. 그 시절엔 길가에 거지도 많았고 '소년의 집' 등에서 생활하는 고아도 많았다. 범죄가 발생하는 윈인의 대부분이 생계와 관련한 것이었다. 지금은 놀지 않고 허드레 일만 해도 입에 풀칠은 하는 세상이지만 그때는 입에 풀칠하는 일조차도 힘들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지금의 범죄는 과거 후진국형 범죄와 달리 먹고 살만 할 때 발생하는 성희롱이나 성폭행 등 性과 관련된 범죄 혹은 마약 관련된 것들이 늘었고 폭행 관련된 범죄도 개인 간 사소한 폭행보다 이권이 개입된 기업형 조직폭력 형태가 많은 듯하다. '보이스 피싱'과 같은 신종범죄도 있다. 성희롱의 경우 과거에는 없던 게 새로 생겼다기보다 과거에는 사회분위기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여성 스스로 피해사실을 감추었다는 생각도 든다.
만일 내가 '수사반장'이었다면 어땠을까? TV에서 최불암이 연기했던 수사반장은 형사이지만 무척 인간적인 옆집 아저씨와 같은 이미지로 남아있는데 실제로 범죄자를 쫓는 직분인 형사가 그 정도 자애롭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된다. 딱한 사정으로 형집행을 받게 되는 피의자가 있을 경우 그는 경찰의 윗선을 찾아가서 선처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드라마에서는 수사반장이 한편당 네 까치 정도의 담배를 피운 걸로 나오는데 당시 애청자였던 대통령 박정희는 그때마다 덩달아 흡연을 하는 바람에 영부인이 최불암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국민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흡연장면은 드라마에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경찰이란 직업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첨병이다. 따라서 범죄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하고 검거하는 것이 주된 책무이다. 하지만 범죄가 발생한 후 신속하게 정보나 수사 노하우를 이용해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70년대 말 어떤 사람이 건널목이 아닌 곳을 건너다 순경에게 잡혀 벌금 딱지를 받았다. 잡힌 사람曰 "불법횡단을 단속하려거든 미리 건너편에서 호각을 불든지 해서 불법횡단을 못하게 해야지 숨어 있다가 잡으면 됩니까?"라고 항의하니 "어! 이 세끼가 머리까지 장발이네"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길에서 장발까지 단속할 때였다. 만일 걸린 사람이 "나 중앙정보부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하고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살펴 가세요"라고 정중하게 예의를 갖췄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내가 한때 신용카드 사고로 피해를 당해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형사 한 사람의 협조를 받아 범인을 잡으려 한 적이 있었다. 결국 범인을 잡기는커녕 대한민국 형사의 민낯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결혼 전 한 방에 둘이 지내는 하숙집에서 내 방에 누군가가 들어와 지갑에 있던 내 신용카드를 운전면허증과 함께 가져가고 사용금지된 다른 신용카드를 대신 끼워놓은 것이다. 주민번호 끝의 네 자리가 비밀번호였는데 그걸 어찌 입력해 맞으니 현금서비스로 ATM기에서 내 카드로 돈을 모두 빼가고 물건도 몇백만 원어치 사버린 것이다.
당시 만난 형사란 인간은 고압적이고 큰소리만 칠뿐 수사능력도 수준이하이고 수사의뢰인에게 식대나 뜯어먹는 쓰레기 같은 짓만 하였다. 돌이켜 보건데 카드사고를 낸 인간은 별 직업도 없이 방마다 TV를 본다고 돌아다니던 '뺀지리'였을 가능성이 높다. 여럿이 지내는 공동생활공간이 아닌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독방이었다면 비용이 들더라도 그런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小貪大失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인간도 문제가 있지만 당한 사람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이미 고조선 때부터 '八條法禁이'라 하는 상해와 살인, 절도에 관한 법이 있는데 그 시절부터 범죄는 행해진 듯하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 직원 하멜이 표류된 후 1653~66년까지 조선에 살면서 기록한 '하멜표류기'에 의하면 조선사람들은 도둑질을 잘하고 거짓말을 잘한다고 나온다. 1636년 병자호란이 끝나고 17년 차에 가뭄이 있었다고 하니 살기가 어지간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인간이 며칠을 굶을 경우 장발장처럼 먹을 걸 훔치지 않을 사람은 없다고 한다. 영화 '변호인'에서는 돼지국밥을 먹고 돈도 안 내고 도망친 사람이 사법고시에 합격해 그 국밥집에 와서 과거 외상값을 갚겠다고 하니 국밥집 여주인이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한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구걸하거나 훔쳐 먹는 사람을 나무라거나 벌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지 모른다. 대통령까지 된 그 사람이 잠시 대전에서 판사생활을 할 시절에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무척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범죄는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 해왔다. 못살던 시절에는 배가 고파서 범죄를 저질렀는데 이제 살만하니 새로운 범죄까지 생기며 교도관의 실직을 막아주고 있다. 과거 춥고 배고프던 시절에는 약자들의 안위를 자기의 그것보다 우선하던 사람들이 많았건만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현재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만일 경제 대공황이 찾아와서 삶의 수준이 40년 전 수준으로 회귀한다고 할 경우라도 과연 그러한 인물이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