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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DJ였다면?

by 최봉기

중고등학교시절 따분한 생활 속에서 한 가지씩 재미를 붙이던 일들이 있었다. 가까운 탁구장에 가서 탁구를 치거나 야구장에 가서 고교 야구경기를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 그러하였다. 이밖에 즐거움을 찾는 일이라면 FM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유행했던 다양한 곡들과 진행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녹음해서 또 듣거나 따라서 부르기도 하였다. 고교시절 입시지옥이란 갑갑한 생활 속에서 집에 돌아와 밤 10시경부터 자기 전까지 두어 시간 책을 보면서 음악을 듣는 시간은 하루 일과 중 나름 유쾌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내가 DJ였다면 어땠을까? 라디오전파를 통해 음악과 생활 관련 토크 그리고 조크 등을 자신만의 색깔로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은 나름 매력적으로 보인다. 라디오 진행자들 가운데에는 라디오에 오래 몸을 담으며 소위 방송계의 거물로 쾌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제 고인이 된 이종환이다.


라디오 전파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멘터를 접하면 어떨 땐 사회평론가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사회에서 일어난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담아 적절히 풀어나가는 걸 들으며 때로는 공감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S대 졸업식에 다녀온 얘기를 음악 중간에 하기도 하였다. 아들이 82학번으로 S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걸로 전해진다. "~세상의 어느 부자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음악은 인간의 삶에 매우 깊이 침투해 있다. 기쁠 때, 슬플 때, 괴로울 때, 축하할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이 있고 맑은 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아니면 졸업시즌, 어버이날, 스승의 날, 어린이날 할 것 없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음악도 있다. 또한 명화에 삽입된 추억의 음악들도 무척 많다. 경음악들은 시낭송 때 삽입되기도 하고 명상이나 힐링에 사용되기도 한다.


비 오는 날엔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졸업 시즌엔 'To sir with love', 어린이날에 'Hey Jude'나 'Too much heaven' 등이 떠오른다. 영화음악 중에는 '대부'의 'Speak softly love',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Moon River', '모정'의 'Love is a many splendid thing', 영화 'Sound of music'의 'Edelweiss 등이 세계적인 명곡들인데 그 밖에도 주옥같은 곡들이 많다.


노래에도 저마다 사연이 있다. 톰존스의 'Green green grass of home'은 옥살이를 하는 죄수가 고향을 그리는 광경을 묘사한 노래인데 1967년 톰존스가 리바이블해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는 1973년 'Dawn'이란 그룹이 노래한 밀리언셀러곡으로 감옥에서 3년형을 마치고 석방된 사람이 사랑하는 이에게 아직도 사랑하고 용서하며 받아준다면 떡갈나무에 노란색 리본을 묶어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서 가슴을 졸이는 내용이다. 그리고 끝부분에서 100개의 리본이 묶여있는 내용을 보여주는 따뜻하고 애틋한 내용을 담은 노래이다.


윤시내의 '열애'란 곡은 부산 MBC의 '배경모'라는 PD 겸 DJ가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아내에게 유언의 형식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일깨워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쓴 戀詩이다. 그 가사에 곡을 붙인 곡을 열창의 대명사 윤시내가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하여 한국 가요사에서 꼽히는 명곡이 되었다.


음악을 들을 때에도 이렇듯 가사에 대한 예비지식이 있으면 곡이 좀 더 생동감 있게 들리기도 한다. 음악에도 장르가 있는데 시대별로 록, 블루스, 락앤롤, 리듬 앤 블루스 등 유행한 스타일이 있다. 또한 곡을 들을 때에도 드럼이나 기타, 키보드 소리를 자세히 들으면 흥을 더할 수 있고 명곡에 빠짐없이 나오는 기타에들립은 곡의 매력을 배가시켜 주기도 한다.


음악은 작곡 과정에서 사연이 있기도 하지만 듣는 사람마다 특정 곡에 대한 사연이 있기도 하다. 한 번은 택시를 탔는데 차에서 '웨딩케익'이란 곡이 나왔다. 평소에 좋아하던 곡이라 기사분께 물어보았다. "이 곡을 어떻게 켜놓으셨어요?"라고 묻자 "혹시 이곡을 싫어하시나요?"라고 되물었다. 나는 "아니오"라고 하자 얼마 전에 이곡을 켜놨는데 어느 여자분이 뒷좌석에 앉아서 계속 훌쩍거리더라는 거였다. 택시기사가 "손님 어디 가세요?"라고 묻자 "그냥 가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웨딩케익은 누군가가 사랑했던 사람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결혼전날 누군가가 결혼 축하케익을 두고 간 걸 보며 애절한 마음을 담은 곡이다. 택시 뒷좌석에서 울던 여자는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결혼을 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한때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이나 '이별이야기'와 같은 곡을 애청하곤 했다. 그 이유는 한때 마음에 있던 여자가 좋아했던 곡이었기에 그러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곡이 나오면 꺼버리거나 다른 곡으로 바꿔 듣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 곡을 좋아했다는 여자와 잠시 알고 지냈지만 끝이 너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겉보기와는 달리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 가증스러운 기억만 남긴 채 멀쩍한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모양이다.


음악이란 인간에게 이렇듯 각양각색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삶에도 굴국이 있듯 음악과 관련된 스토리에도 여러 사연이 있어 누구는 같은 음악을 들으며 예찬할 때 누구는 마음속에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창작되어 꽃씨와도 갈이 전 세계로 퍼지는 음악의 힘은 위대하다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죽어가는 생명에게 메마른 대지의 단비와 같이 촉촉함을 주고 지친 영혼에게 다시 일어나 뛸 수 있게 하는 '험한 세상의 다리'와 같은 음악이 많이 창작되길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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