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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야구해설가였다면?

by 최봉기

야구시합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합을 하는 팀의 선수와 감독 그리고 심판이 있어야 한다. 그밖에 게임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게 시합을 보는 관중과 관중의 응원 그리고 해설가이다. 해설가의 설명 없이 경기장에서 혼자 경기를 보게 되면 게임의 흐름과 선수들의 심리상태 등을 제대로 알기 어려워 단지 스코어로만 경기를 따라갈 뿐 눈에 보이지 않는 득점의 섬세한 과정을 놓치게 된다.


이렇듯 야구해설가의 존재감 내지 영향력은 관중이나 TV시청자의 관심 내지 야구의 이해가 성숙할수록 커짐을 알 수 있다. 내가 야구에 대한 이해 수준이 초보였던 중고등학교시절 고 이호헌 해설위원이 게임 중간중간에 들려주던 해설멘터가 기억난다. 타자가 크게 헛스윙하다 헬멧이 바닥에 떨어질 때이다. "호무랑은 타이밍이 맞을 때 나오지 저렇게 크게 스윙한다고 나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저러다 한번 댐빵으로 맞으면 넘어가기도 합니다."라고 사투리까지 섞어가며 구수하게 진행했다. 또한 대학시절 그는 "해태 타이거스의 문희수 투수는 공도 빠르고 좋은 투구를 합니다. 한 가지 흠이라면 공이 너무 깨끗하다는 겁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만일 내가 야구해설가라면 어땠을까?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40년이 됐고 초창기의 스타플레이어 중에는 이미 세상과 결별한 경우도 꽤 있다. 방송계에서 야구해설로 오래 마이크를 놓지 않았던 하일성과 허구연 정도의 해설가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해설가란 직업만 놓고 말한다면 시합 전 주요 선수들과 감독을 만나 최근 선수들의 몸상태나 팀분위기 등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야구의 식견을 통해 경기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은 무척 흥미롭고도 매력적인 일로 보인다.


고인이 된 하일성은 선수시절 무명으로 야구를 대학중간에 그만두고 체육교사를 하다 우연히 기회가 되어 고교야구 해설을 했고 프로야구가 출범해 전문해설가로 일하며 관록이 붙게 되었다. 사실 처음 고교야구 해설을 할 땐 해설 수준이 떨어져 중도하차할 뻔했는데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하여 월급을 일본 야구 전문잡지 번역에 쏟아부으며 자기 계발을 했다고 한다. 하일성은 야구 자체의 전문식견보다 구수한 입담을 통한 대중적 이미지가 한층 어필됐던 것 같다.


현재 KBO총재인 허구연은 선수시절 국가대표의 중심타자로 뛸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는데 1976년 한일전에서 큰 부상을 입어 4차례의 대수술 후 선수생활을 접고 해설가로 변신하게 되었다. 해설을 하는 스타일도 데이터와 경험을 통해 정확한 해설을 하며 경기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한때 국내 프로야구의 최연소 감독으로 '청보핀토스'를 맡은 바 있지만 연패로 중도하차한 쓰라린 경험도 있다. 당시를 회고하며 했던 말이 "감독은 직접 나서기보다는 코치들에게 권한을 주고 자신은 매니지먼트를 하는 자리인데 그렇지 못했던 게 실패 원인이었다"라고 했다.


야구란 스포츠가 일반인에게 이토록 지속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 이유를 보면 9회까지 경기가 진행되는 과정이 인생과 흡사하기에 그런 것 같다. 초반에 경기가 잘 풀려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해도 잠깐 방심하거나 상대팀이 중요한 기회를 잘 살릴 경우 경기의 흐름이 일순간 넘어가 버리며 경기의 향방을 알 수 없게 된다. 경기의 흐름은 곧 인체의 맥과도 같은데 중요한 시점에 승부수를 던져 성공하면 이기는 것이고 실패하면 지는 게 야구이다. 유능한 감독이라면 승부처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아내고 승부처에서 필승전략을 통해 기필코 승리를 거두는 사람이다.


암만 완벽한 경기운영을 했던 투수라도 수비에서 사소한 실수가 나오거나 상대방이 끝까지 물고 늘어져 계속 파울을 만들 경우 추격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야구란 스포츠는 수비를 할 때 내외야수 간의 협력수비가 빈틈없이 이루어져야 하고 공격 시에도 하위타선에서부터 출루가 이루어지고 상위타선에서 안타가 나오며 득점을 하는 것이다. 야구는 단체스포츠이므로 전 선수가 하나가 되어 똘똘 뭉칠 경우 기량이 출중한 선수로 구성된 팀도 물리치는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한다. 1981년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특별한 스타도 없던 경북고가 박노준을 비롯한 고교의 스타선수로 구성된 선린상고를 물리치고 감격적인 우승을 했던 것이다.


고인이 된 하일성 해설위원이 생전에 한 번씩 했던 명언이 있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이 내일을 모는다는 사실이다. 야구도 9회 말 스리아웃이 되어야 끝나는 거지 투아웃에서는 아무도 결과를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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